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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가 쌓이고 쌓여서 잔뜩 늦어진, 세 번째 다녀온 태국 정리.

개인적으로도 안 좋은 일들이 쌓이기도 했고 -_-;
늦게 조금씩이나마 쓸까 하고 봤더니 티스토리 개편으로 글쓰기 버튼이 어딨는지 모르겠고....-_-;;

아무튼, 한 번에 정리해서 쓰기!
(그래서 사진으로 때운다;;)


언젠가 인천공항이 너무 초현대적인 것들만 강조하고 한국에 대한 내용은 없어서 아쉽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그건 정말 옛말이다.
가운데 주 통로에는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탑승동에는 전시실까지 있다.

더구나, 떠나는 날이 추석이다보니 특별행사(?)까지 준비한 듯.


깜빡하고 신용카드를 안가져가는 바람에, 이번엔 면세점은 죄다 건너뛰었다. -ㅅ-;;;
가격만 물어보고 막상 계산하려니 신용카드가 없다고 도망친 건 본의가 아니었는데, 웃는 얼굴로 '이건 왠 진상 -_-'이라고 말하는 면세점 직원 아주머니께 뭐라 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바로 라운지 순회하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아참, 허브라운지에 아이스크림이 사라졌다. 흑흑 ㅠㅠ
내가 그거때문에 허브라운지 가는거였는데!

아무튼, 방콕까지는 비행기는 금방 도착.
어느새 방콕엔 세 번째 방문인데, 매번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방법이 다르다.

이번엔 공항에서 방콕 시내까지 연결해주는 공항철도를 타보기로 했다.


아저씨가 쏘아보며 말하듯, 공항에서 시내까지 단 17분이면 갈 수 있다.
버스로 들어갈 때는 기다리는 시간만해도 장난 아니었는데!
아직 개통한지 얼마 안된만큼, 올 12월까지는 요금할인도 해준댄다;


내부 의자는 보는 것처럼, 푹신푹신하고 편하다.
최소한 비행기 의자보단 훨씬. -ㅅ-;;


아참, 대한항공에서 모닝캄이 되면 저렇게 수하물에 딱지 붙여준다.
직원 말로는 '프레스티지 다음으로 빨리 나올꺼에요~'라는데, 정작 이게 난감한건, 보통 해외 비행기를 탈 때는 여러 명이서 같이 타기 때문이다.
혼자 짐이 빨리 나오면 뭐하나, 같이 차 타고 갈 사람들 짐까지 다 나와야지..-ㅅ-;;
근데, 혼자 여행 떠나는 만큼, 이번 만은 모닝캄 혜택을 누리고 말테다! 라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정작 짐은 엄청 늦게 나왔다. -_-;;;;;;;
프레스티지는 당근 먼저 나오는데, 모닝캄  회원 짐은 거의 막바지에 나온 듯.......-_-;;;
짐 끌고 나오면서 내내 대한항공 모닝캄! 이게 뭐임!이라면서 궁시렁궁시렁 -_-;;
뭐 라운지 무료 혜택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PP카드로 라운지 순회하는 사람 입장에선 라운지 혜택은 그닥;;
일부러 더 비싼 대한항공 끊었는데....ㅠㅠ (사실은 급하게 티켓 사느라 몇 만원 차이 안나길래;;)


공항철도 파야타이 역은 태국 지상철 BTS 파야타이 역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환승할 때 처럼 바로 연결된 건 아니고, 보이는 것처럼 역 두개가 나란히 붙어있다고 봐야 한다.
걸어가면 한 2~3분 쯤?

그리고 내친김에, 숙소가 그럭저럭 걸어가도 될만한 거리라서 가방을 '들고' 걸어가기로 했다.
방콕 보도블럭은 캐리어를 끌고갈만한 환경은 안되기 때문에...-ㅅ-;
택시나 지상철을 힘들다고 마구 타고다닐 정도로 넉넉한 형편도 아니라서..뭐 겸사겸사;


숙소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저 멀리 보이는게 태국 지상철이다.

첫 날은 피곤한만큼, 짐 풀고 대충 정리하고, 알람만 맞춰두고 취침. =ㅅ=


다음날 아침, 태국 BTS 지상철을 타러 간 곳에 걸린 광고판. 태국도 옵티머스 3D, Black 등등을 파나보다.
태국에 온 첫날, 짜오프라야 강을 타고 카오산로드로 간다.
숙소에서 카오산로드로 가는 길이 제법 편리하게 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첫 날 타보지 않으면 시간이 안될거 같은 수상버스!


근데 막상 갔더니 앞에 이런 안내판이 붙어있다.
태국 왕실 행사로 인해 해군에서 짜오프라야 강의 모든 선박 운행을 통제한댄다.
보트가 오네 안오네 어쩌네 하고, 옆에 있는 안내원이라는 아저씨는 나한테 해주는 얘기랑 바로 앞의 일본 관광객한테 해주는 얘기랑 서로 다르고...뭐 어쩌란건지. -ㅅ-;;
한 10분 정도 우왕좌왕 하고 있으니 마침 보트가 와서 탔다;;


수상버스 승무원 아저씨는 중간중간 공부라도 하는듯;


사진 찍을 때는 별 생각 없이 찍었는데, 태국 홍수 소식 들려줄 때 한국 방송국 직원들이 저 군함을 타고 취재했다. -ㅅ-;;


이건 카오산로드에서 파는 바나나 로티.
길거리에서도 팔지만 카오산로드에는 이걸 파는 음식점도 있다.
로티는...음 -_-a 호떡이라고 해야하나? 여기에 초콜릿과 바나나가 들어간다.
한 마디로 설명하라면, '매우매우 달다'.
설탕을 한 스푼 떠서 물엿에 푹 담궜다가 떠먹는 느낌이랄까나.
같은 부피의 설탕보다 더 달 것으로 짐작됨.


BTS는 지상철이라서, 역 끝에서 보이는 일직선의 철로와 풍경도 괜찮다.
이제 뭐, BTS 정도는 현지인처럼 잘 탈 수 있음!! -ㅅ-/
사진 찍을 땐 몰랐는데, 철도 공무원 아저씨가 찍어달라는 듯이 무게중심이 기울어져있었네;


이건 쏨분 씨푸드에서 시켜먹었던 어쑤언과 뿌 팟퐁 커리.
손통포차나에서 먹었던 걸 기대하고 시켰었는데...음, 어쑤언은 좀 아쉬웠다.
기왕 갈거면 쏜통포차나로 가는게 나을 듯.
이번에 태국 온 목표중 하나는 어쑤언과 뿌 팟퐁 커리를 다시 먹는거였는데, 절반의 성공? =ㅅ=;


색소폰 펍.
원래는 맥주 한 두 병 시켜놓고 여유있게 연주나 듣자는 계획이었는데...이건 오산이었다. =ㅅ=;;
여행갱 혼자 앉아서 맥주 마시고 있으려니, 맥주가 비기가 무섭게 종업원이 와서 뭐 시킬거냐고 물어본다;
(술집이니까) 주변에서도 다들 술 마시는데 물만 달라고 하거나, 그냥 앉아만 있기엔 밴드에 미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술집에 혼자갔으니 아무런 부담없이, 즉 남 뒷처리 할 걱정 없이 마음껏 술을 시켰다;;
정작 마구마구 시켜서 칵테일을 먹어도 맥주를 먹어도 술은 잘 안취하더라. -_-;;;;
.....그러고서 나갈 때 계산서 보고는 정말 휘청했다;;
혼자서 술집에 오면 안되는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했음. 한국에서 안먹는 술을 여기서 이렇게 마실 줄이야.


숙소 옆에 편의점이 있어서, 자기 전에 마실 음료수를 사러 들렀다.
이 패턴은 일정내내 거의 반복됨;;
방에서 쳐다보는 야경이 괜찮기에, 간단히 쥬스나 콜라 마시면서 이런저런 잡생각하면서 자기 전에 정리하기에 좋았으니까.


요건 아침에 떠나기 전 찍은 사진. -ㅅ-;
뭐, 야경만큼은 아니지만;;;


태국의 '용산 전자상가'라고 할 수 있는 IT City.
뭐, 관광객 대상으로 '얼마까지 알아보셨어요?'까지는 안하더라.
한국에서는 안파는 인터넷 공유기를 살까 해서 들렀는데....엄청나게 비싸다.
한국에서 구매대행으로 사는 것 보다 비싸게 부르길래 그냥 포기;


포기하고 나오는 길에 발견한 박지성 광고판, 아니 맨체스터 광고판. =ㅅ=

점심먹으러 간 식당에선, 마침 지나가던 다른 한국 여행객분이, '한국 분이세요? 여기 이게 맛있어요~' 하면서 주신 쪽지.
태국어를 읽을 줄도, 말할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영어로 의사소통하기엔 한참 뒤떨어지는 어리버리 여행객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구원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 (_ _)



태국의 BIG C. 대형 마트로, 한국으로 따지면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곳이다.

태국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처음으로 운하 보트를 타보게 됐다.
짜오프라야강의 지류(?)라고 할 수 있는 운하가 태국을 동서로 지나가고 있어서, 교통체증과는 관계없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대신 이게 이번 태국 홍수에는 불리하게 작용했겠지만...쩝.


일단 들아가서 앉게 되면, 저렇게 상당한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승무원이 승차요금을 받는다.
요금은 6.5 바트로, '중급 버스', 즉 에어컨 있는 버스와 가격이 똑같다.
물론, 운하 보트에는 에어컨 따위는 없고 -ㅅ-;;;

저렇게 달릴 때는 에어컨도 그닥 필요 없이 시원하기도 하고 =ㅅ=
아참, 저 옆의 가림막이...일종의 창문역할을 한다.
물보라가 튀는 걸 막기 위해서;;


카오산로드에서 파는 로티.


여기는 IT City 건너편에 있는 시장거리인데,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가 바로 베이욕타워 바로 앞 거리였다.
바로 건너편에는 베이욕타워 짝퉁(?) 건물까지;


운하 근처에는 이렇게 일반 거주지가 있다.
이제와서 다시 보니, 물난리때 다들 어떻게 되었을지..쩝.


맨체스터 공식 인증 오토바이...는 아닐꺼고;

동대문이라는,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여행사에서 투어를 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김치말이국수와 짬뽕. -ㅅ-a


이 때 가는 투어는 암파와 수상시장 + 기차길 시장.
먼저 간 곳은 기차길 시장으로, 철로 위에 시장이 운행되다가 기차가 지나갈 때는 잠시 접었다가 다시 편다;
펼쳐놓은 좌판에 달려있는 바퀴
죽 걸어가면 기차역이 나온다.
곧 관광객들 뒤를 쫓아갈 기차. -_-;;
알아서 잘 피해야한다.
저 조끼는 어디서 사신건지;;
기차 들어올 시간이 되면, 저렇게 좌판과 천막을 접는다.
관광객들은 중간에 문 닫은 상점 앞에서 저렇게 기다렸다가 사진도 찍고, 기차도 구경한다.
기차 지나가는 건 동영상으로 찍었으나...생략 =ㅅ=;
기차가 정말 눈 앞 15cm 정도 지점에서 통과하는 걸 볼 수 있다.
상점 사모님께서 위험하니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얌전히 잘 따라야 함. -_-;;;
다시 차 타고 이동하는 가운데 본 태국의 스쿨버스...?;;;
이번에 볼 건 암파와 수상시장이에요~ 라고 말하는 가이드님.
근데 왜 날 보곤 표정이...-_-;;; 아니, 뭐 딱히 반론은 못하겠습니다만.

다리 바로 옆에는 푸드코트가 있다.
다른 시장의 푸드코트와 차별화 된 특장점이라면, 음식의 싱싱함?;;;
저렇게 보트 이에서 조리하고, 손님들은 계단에 앉아서 먹으면 된다.

주문 받는 건 꼬마애들이고, 요리는 어머니들이 하신다. =ㅅ=;


푸드코트에서 다리를 건너가면 바로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한 분 계신데..가격도 싸고 아이스크림도 맛있다.


수상시장의 장점중 하나로, 생음악이 울려퍼진다는 것이 있다.
바로 이렇게, 노래방 시설을 갖추고 현지에서 특별히 초빙한 가수분께서 공연을 펼쳐주신다.
음..오른 쪽에 있는 아저씨가 아마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보안요원쯤 될 듯.

해가 저물면, 수상보트를 타고 반딧불 투어를 간다.

반딧불이는 덤불이나 나무에서 깜빡 깜빡 거리는 걸 보러 가는 것이다.
서울에서만 살아왔던 사람에겐 이번이 두 번째 반딧불이를 보는 것이라 신기했다. ^^;
첫 번째가 워낙 강렬해서 이 번엔 약간 아쉽기는 했다.
그거야 뭐...그 때는 하늘에선 쏟아지는 별과 완전히 어두컴컴한 암흑에 보트 옆을 스쳐지나가는 반딧불이를 봤었으니까;;
암파와 투어는 주변에 숙소등이 많아서 불빛 때문에 그런 완전한 암흑은 아니다.
그래도, 볼 수 있다는게 어디야 =ㅅ=


어쨌든 어느새 시간은 흘러 흘러 마지막 날!


아유타야 투어를 가기로 했다.
지금 길을 글게 쓰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아유타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그냥 남들이 정리해 준 걸 보는게 나을 듯;
아유타야는 햇볕 쨍쨍에 완전 더운, 그 대신 아무데나 사진을 찍어도 그림이 나온다.
안타까운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도 관리가 안되고 있는 유적지들이다. ㅠㅠ
개 풀 뜯어먹는 장면...-_-;;
일본인 관광객들이 엄청 많은데, 그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인지 도라에몽이 모셔진 곳도..-_-;;
이런 불상들은 기도 드리는 사람들이 금박을 한 장씩 사다가 입히는 것이다.
이건 뭐임. ㅠㅠ
아유타야는 미얀마에 의해서 멸망한 곳인데, 불상들은 대부분 머리가 잘려있다.
그 때 당시 잘린 머리를 마치 보호하고 있는 듯한 형태의 나무.
아유타야 왕궁 옆에선 코끼리 쇼를 보여주는 곳이 있다.
....그런데 중간중간 저런 갈고리로 찌르면서 말을 듣게 하는 걸 보고 좀 불편했음;

두 달이나 지나서 쓰려니...^^;;
지금 오래 붙잡고 있을만한 형편도 안되고, 길게 글 쓰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래서, 미루면 안된다니까. -ㅅ-;;

그 사이에 태국은 사상 최악의 홍수로 아유타야 지방이 물에 잠겨버렸다.
태국 유적지는, 특히 아유타야는 뭐랄까, 관리가 매우 허술하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여기저기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고, 유적지를 마구 타넘는다거나, 위 사진처럼 낙서까지..
맘만 먹으면 벽돌 마구 집어가도 될듯한 분위기.
거기에 이번 홍수까지 발생했으니...ㅠㅠ

아유타야 지역 홍수 동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v=bVtgMjOGRJw&feature=player_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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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로운 회사생활.
Messenger에서 나의 정체성을 묘사해주는, 지금의 대화명이다.
다음 주 정도 되면 '잡일 담당자' 정도로 바뀔 여정이긴 하지만, 그래서 고민이 많긴 하지만, 어쨌든 9월 초의 회사생활은 그야말로 여유였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회사에서 추석 연휴를 알리는 공지메일을 받았을 때 바로 '그래! 놀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면담, 면담, '그래, 어차피 하는 거 없으니 그동안 못 쓴 휴가 쓰셈~'이라고 허락받고는 어느새 일주일짜리 휴가가 덜컥 생겨버렸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일주일짜리 휴가'라는 것의 희소성을 잘 알고 있다.
그것도 이 시대의 3D 업종인 IT에 종사하고 있다면, 그 가치는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귀중한, 회사생활 5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를 허무하게 써서는 안된다!
...라는 강박관념은, 이미 진즉에 잔고없음을 알리는 통장의 비명을 지워버렸다.
직장인에겐, 신용카드님이 계시니까.
(이런 대사가 나오면 언제나 그 결말은 비극이다. 덧붙여, 지금 다니는 회사는 '임직원에게 추석 보너스를 지급했다'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_-)

이렇게 갑작스럽게 휴가가 생겨 어디론가 놀러가기로 하면, 당연히 비용이 올라간다.
특히 추석 연휴라면 뭐든지 비싸게 받는 성수기의 끝자락.
여기저기 알아봤으나...역시나 싼 비행기 표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아니, 의외로 시드니까지의 왕복 비용이 싸다는 걸 깨닫긴 했는데.....잠깐 알아본 살인적인 현지 물가는 값싼 비행기표의 장점을 간단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뭐, 별 수 있나. 급하게 출발하는거니까 준비할 시간도 없고, 갔던데 가자.
그래서 그냥 가봤던 태국, 방콕으로 가기로 했다. -_-;;;
여행 떠나기 전에 사전조사를 제법 하는 편인데, 일단 태국은 한 번 가봤던 곳이기도 하고, 중요한 자료 몇 가지만 준비하면 바로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간단히 결정하고, 자료 준비는 프린터에게 시키고, 추석 성수기 표답게 엄청 비싼 비행기표를 손에 든 채, 태국으로 떠났다.

어느새 세 번째 방문하는 이번 태국행의 목표는, '안 가본 데 가보고, 안 먹어본거 먹어보고, 안 타본거 타보기'
물론 반드시 다시가고 싶은 곳도 꼭 들르기! -ㅅ-/


시작부터 낯선 길로!
이번에 새로 개통한 공항철도를 타봤다.
홍대입구역에서 환승했는데.......기억에 남는 건 '공항철도, 이쪽길로 300m' 표지판. -_-;;
아 물론 공항 리무진보단 훨씬 싸긴 한데, 짐이 많다 싶으면 그냥 돈 더내고 리무진 타는게 낫다 싶었다.
리무진은 탑승수속 카운터 거의 바로 앞에서 내려주니까 캐리어를 가볍게 끌고 갈 수 있지만, 공항철도를 타고 가면 내리고 나서도 한참 올라가고 걸어가야 하는 일이 남았다는 점도 유념.

.....게을러서 계속 차일피일 미루다가, 뒤늦게 일단 시작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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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쯤해선 버스여행이라고 이릅뭍여도 될 법한 터키여행이 마침내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마지막 날이라고해서 딱히 별달리 짐 챙길 일은 없다.
평소에도 매일 자는 호텔이 바뀌게 되니, 항상 짐을 챙겨 나왔으니까.
다른 점이라면, 드디어 끝이구나 하는 마음 가짐 정도?

뭐, 바로 공항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도 여전히 일정이 있다.


우선 그 시작은, 이스탄불의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배를 타고 둘러보는 것이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는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에 걸쳐 있는데, 그 경계선이 바로 보스포러스 해협이다.
서울의 한강처럼 도시 가운데를 물이 흐르고 있지만, 이스탄불의 경우는 그게 바다라는 점.


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문화재들을 본다...라는 것이 아마도 목적인듯 싶다.
뭐, 저 멀리 블루 모스크도 보이기도 하는데..


아쉬운 점이라면, 배타고 멀리서 지나가다보니 그냥 와~ 저기 멀리 뭔가 있다, 정도로 지나간다는 점이다;
한겨울의 바다위를 지나가다보니, 바람은 세차게 불지, 날씨는 춥지....배 위에 있는 사람보다 배 안쪽 객실에 들어간 사람이 훨씬 많았다. 뭐, 당연한건가 -ㅅ-;;


터키 국민의 98%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보니, 모스크가 정말 많다.
아무리 그래봐야 서울의 시뻘건 십자가 행렬에는 못당하겠지만..-ㅅ-;
교회같은 경우는 아무 건물이나 아무나 들어가서 아무나 분파 만들고 돈내놔라고 외쳐도 뻘건 십자가 올릴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슬람교는 교구 나눠서 관리하는 천주교에 가깝다고 봐야 할지도.


바로 이 배를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구경....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탔던 배는 첫 사진에 나오는 그냥 그런 유람선이고 이건 항구에 정박해있던 어마어마하게 큰 배다.
이 배랑 비교하니 나룻배로 보일 지경...-ㅅ-;;;


오늘도 여전히 돌마바흐체는 스쳐지나갈 뿐... -ㅅ-;;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게,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오고 싶다.
다음 번엔 자유 여행으로;;


그리고 이상하게도 바다 색이 이렇게 구분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해류......라거나 한건가? =ㅅ=;
도시에서만 살아본 촌놈은 그저 신기할 뿐;;;;


배에서 올라온 다음은 바로 성 소피아 사원을 구경하러 간다.
성 소피아 사원은 첫 날 갔었던 블루 모스크 근처에 있다
사진은 지나가면서 찍은 블루 모스크.


첫날은 안개가 심해서 육안으로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나마 오늘은 안개가 많이 끼지 않았다.
여전히 하늘은 살짝 흐리다.
그래도 첫 날 못봤던 전경을 멀리서 보게 되니 그나마 다행! :)


그리고 이 쪽이 성 소피아 사원이다.


인류가 지은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로마 제국 시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축되었다.
원래는 이 자리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가 지은 성당이 있었지만 소실되고, 다시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에 의해 재건되었지만, 다시 화재로 불타버린다.
사진은 테오도시우스 시절의 건축물이 일부 남아있는 것에 대해 설명한 표지판.

  그리고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즉위하면서 즉시 더 큰 성당을 재건하도록 명령하고, 6년에 가까운 공사 끝에 이 성당이 완성된 것이다.



속설에 의하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바로 이 문을 넘어가면서 크고 아름다운 성당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솔로몬이여, 이제 내가 그대를 이겼소!"...라는 대사를 읊었다고 한다.
뭐, 믿거나 말거나. -ㅅ-;


안으로 들어서면 블루 모스크와 마찬가지로 저렇게 전등 시설이 있다.
이 역시 당시부터 쓰이던 초 틀에 전등 시설만 한 것이라고 한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여기저기 얼룩진 곳과 아랍글자가 적힌 곳이 보인다.
터키 관광청에서 장식물을 더한 것은 아니고..-_-a 로마 제국 멸망 후, 투르크 제국에 점령당했을 때 생긴 일이다.
당시 술탄이었던 메메드2세는 성 소피아 성당을,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슬람 교의 승리의 상징으로 삼기로 하고 건물을 허무는 대신 모스크, 즉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를 명한다.
덕택에 성당 안에 있던 십자가는 모두 제거하고 각종 성화등이 그려져 있던 벽, 천정은 회반죽으로 덧칠하게 된다.
지금은 저렇게 조금씩 회반죽을 벗겨내며, 그 아래에 있었던 모습을 조금씩 복원하고 있다.


돔 바로 아래쪽에 있는 파란색 십자가 비슷한 모습은 원래 천사가 그려져 있던 부분을 조금식 복원하는 중이다.
모스크로 개조된 성 사피아 사원은 모스크 사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이스탄불 점령과 동시에 시작되었던 그 임무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 멸망과 함께 끝나고 만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짙게 받고 있었던 만큼, 오스만 투르크 제국 뒤에 들어선 공화국에 대한 압력은 상당했다.
성 소피아 사원을 당장 성당으로 복원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터키 공화국 정부는 성 소피아 사원을 특정 종교 소속으로 넘기는 것을 거붛고 이를 인류의 공동유산으로 선포했다.
아울러, 사원 내에서는 일체의 종교활동을 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블루 모스크와는 달리, 성 소피아 사원은 지금 종교건물로는 사용되지 않고, 문화재로서의 역할만 받았을 뿐이다.


과연 이런 건물을 6년만에 완성시켰어? 라고 생각할 정도로 성 소피아 사원은 웅장하다.


2층에서 내려다 본 성 소피아 성당 내부.
성 소피아 사원은 국가의 중요한 예배를 치루는데도 사용되었는데, 2층에서는 귀부인들이나 그 사용인들이 참석했던 곳이라고 한다.
마치 아래에 빛으로 된 꽃이 떠 있는듯한 느낌까지 주는 이 곳이 오히려 더 좋은 듯. ^^;


2층 복도. 회반죽과 그 아래에 있는 그림의 모습이 천장에 나타나있다.


원래는 금으로 된 모자이크가 있었던 벽.


여기는 다시 1층
원래는 무슨 즉위식? 대관식? 이런 행사가 있을때 사용되던 바닥이라고 한다.
그래서 울타리 쳐서 들아기지 못하게 했다는데...들어가면 자동으로 왕이되는 마법이 발동한다거나? -ㅅ-a;;


모스크 한 가운데, 전등이 있는 틀 바로 밑에서.


그리고 그 위의 천장.
소피아 사원은 웅장하고, 멋있는 건물이긴 한데, 군데군데가 저렇게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는게 살짝 아쉬웠다.
차라리 회교 사원으로 개조된 뒤의 모습으로 공개를 했다면 더 깔끔했겠지만, 그럼 관광객들이 그 밑에 있는 모습을 궁금해했겠지.


천장 역시 금으로 된 모자이크로 뒤덮여 있다.
노란 부분은 황금으로, 흰색 부분은 은으로 등등..이렇게 귀금속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 소피아 성당에 쓰인 황금은 자그만치 황금 20톤에 분량이라고 한다.
금이라는 물질이 연성이 매우 높은 금속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글자 그대로 황금을 건물에 쏟아부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바닥에 있는 돌도 하나같이 대리석이다.
오죽 많은 대리석이 들어갔으면, 로마 제국시절, 성 소피아 사원을 건설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대리석을 끌어모았다고 하니.
이 중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 근처에서 가져온 대리석도 있댄다.


성 소피아 사원은 워낙 유명한 관광지다보니 구경하려는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과연 명불허전이라, 그 웅장함과 화려함은 대단했다.
뭐, 군데군데 회반죽 칠이 되어 있다거나, 아직 복원중인 곳이 있다는 건 아쉬웠지만.
몇 년 뒤에 다시 한 번 와보라는 사원측의 배려가 아닐까? :)

아야 소피아를 마지막으로, 터키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줄구장창 버스만 타고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려니까 또 많이 아쉬운건 어쩔 수 없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PP카드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두 군데.
그 중 HSBC premier lounge에 들어갔다.
음..이 쪽이 전망이 더 좋아보이길래 들어갔는데, 맛있는 닭고기와 샌드위치와 빵종류, 그리고 무엇보다 EFES 생맥주가 있었다 :)
내부 시설도 깨끗하고 의자도 나름 편해서 만족도가 꽤 높았다 :)
모스크바 공항에서의 그 라운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그리고, 돌아가는 비행기는 새삼스럽게 다시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러시아 항공. -ㅅ-;;
이미 러시아 항공에 대한 솔직한 감상은 처음 타는 순간 했으니 따로 할 말은 없다;
아니 뭐, 이번엔 그 실체를 알게 되었으니, 처음만큼의 충격은 사라졌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 포기하면 편하지. -ㅅ-;



자, 그리고 여행 다녀온 후기.

역시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게 취향에 맞다면, 패키지 여행은 불편하다.
뭔가 좀 더 보고 싶어도 시간에 맞춰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고, 뭔가 사기 싫어도 상점에 들러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당연히 그런 상점 이용을 조장하기 위해 다른 상점에는 애초에 갈 시간을 안 만들어준다는 점. -_-;
성 소피아 사원이나 블루 모스크같이 좀 큰 선물은 사진 찍기 좋은 곳 가서 전체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싶지만, 상황이 허락해주질 않으므로 어쩔 수 없다.

물론 패키지 여행에 단점만 있다는 건 아니다.
이동편 걱정할 필요도, 일정 걱정할 필요도, 시간 관리도 다 할 거 없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단지 성향이 그 편이 아닌 사람에겐 조금 불편하다는 점이다.
음, 이를테면 뭐 먹을지 메뉴를 걱정할 필요 없다는 점과, 고민해서 메뉴를 결정하는 점에 대한 차이점이랄까.

그리고 여행다닐 때 아이폰은 매우 편리하다.
특히 Lonely planet에서 각 도시별로 안내용 app을 출시했는데, 이거 하나만 있으면 근처에 있는 숙소, 식당, 문화재 등의 관광 정보를 data 통신을 하지 않고도 손쉽게 알 수 있다.
현재 위치를 지도에 쉽게 표시해 주는 것도 물론 가능.

이번 여행처럼 터키 전역을 단 시간에 돌아다니려면, 그나마 패키지 여행이 제일 낫다.
단, 돈을 조금 더 주고라도 숙소는 좀 좋은 곳으로 하는게 좋을 듯.
숙소가 불편한 것만 제외하면 터키 여행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수도인 이스탄불은 대 제국이 몇 번이나 겪으면서 그 수도 역할을 충실히 했던 곳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지.
거기다가 터키는 국가의 역사적 특성상,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각각 거쳐가다보니 이로 인한 종교 대립의 모습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고. 성 소피아 사원이 대표적이다.

덕택에 '성지순례'라면서 이 쪽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은 듯. 관련 여행 패키지가 아예 따로 있나보다. -ㅅ-;; (설마 모스크에서 기도하니까 신앙심이 더 깊어져요~ 하는 건 아니겠지)
하긴 성경에 나오는 지명들이 실존하고 있는 곳이 터키니까.
게다가 구약성경의 경우는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가 공유하고 있어서 공통되는 유물도 있는듯 하다.
대표적으로 모세 지팡이. -ㅅ-;;
하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성지순례를 메카로 간다는거;



이건 마지막 보너스.
귀뒤에 저건, 러시아인의 위생상태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해주는 훌륭한 증거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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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터키 땅에서 잠을 자는 마지막 날.
즉, 오늘도 열심히(?)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이스탄불로 돌아가 잠을 자고 나면, 내일은 지중해에 안녕을 고하고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아, 뭔지 뭐르게 터키 여행와서는 버스탄 기억 밖에 없는 거 같아......라며 눈을 뜬다.


왠지 여름철에 놀러왔다면 딱 좋았을 호텔 방.
-ㅅ- 물론 겨울철이니까 이런 좋은 방에서 잘 수 있었겠지;; 쿨럭;
어쨌든, 풍경이나마 보면서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자! 라고 다짐한다.
.......근데 다짐하면 뭘 어쩌나; 패키지 여행은 그냥 시키는 대로 가야 하는 것을;


오늘의 시작은 아이발릭, 이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널리 알려진 지명, 즉 트로이라고 말하는게 좀 더 있어보인다. -ㅅ-;;
슐레이만의 명성을 혁혁히 드높이게 된 곳이기도 하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로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런데...트로이는 사실 아직 "눈으로 볼만한 구경거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아직 발굴 중이라는 것도 그렇고, 터키땅 자체가 워낙 인기많은 땅이다보니 이런저런 문명들이 많이 지나갔던 곳이라 유물도 여러 시대 것들이 뒤엉켜서 나온댄다.

그러다보니, 정말 주춧돌만 남아있는 곳에서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중간중간 표지판에 삽화가 도와주는 곳에선 내친 김에 도로 위에 지나가는 행인과 뒤따르는 수행 노예들, 올리브유를 양쪽에 나눠 싣고 상인 손에 끌려가는 나귀들, 가판대에 가득히 과일을 쌓아두고 목청껏 소리지르는 과일상 등을 내키는대로 그려준다.
성벽인가 싶은 곳에선 성벽 너머로 돌 던지는 병사들. 투구끈을 고쳐매며 내 옆을 뛰어가는 전령. 바다위에서 화살을 쏘아대는 군선까지 저 멀리에 띄워볼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뭐 바꿔말하면 자기 멋대로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도화지가 백지상태라고 보면 된다. -ㅅ-a
"경치 좋은 산책 코스인개벼"라는 소리까지 나왔으니 뭐 -_-;;
하다못해 영화 트로이만 봤더라도 그럭저럭 상상할만한 재료는 가지고 왔을텐데, 사실 일반상식 선에서는 트로이 = 목마 정도로 끝이니까.


영화 트로이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상당부분을 따와 만들었다.
그런데 이 그리스 신화란 것이 현실과 신화를 넘나들며 상당히 복잡하고도 길다. -ㅅ-;;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화법으로 꾸역꾸역 적느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그냥 copy & paste하는게 낫겠지만.....저작권이란 게 무서운지라. -ㅅ-;

사건의 발단은 파리스라는 그저 운 좋게 떡 주워 먹은 아저씨가 태어나면서 부터이다.
파리스는 태어나길 트로이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역시 운 좋은 사람은 태어나는 것 부터 다르다. -_-;;
그런데 하필이면 왕비님이 출산하면서 무지 안좋은 꿈을 꾸셨댄다.
예언자들을 불러서 해몽하라 했더니, 평소 안좋은 감정이라도 있었던지 "이 아이는 장차 트로이를 잿더미로 만들 왕자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뭐 어쩌랴, 트로이를 불바다로 만든다는데. 왕과 왕비는 갓 태어난 왕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꼭 구체적으로 지시를 안내리면 늘상 생기듯이, 명령받은 부하가 차마 제 손으로 죽이지 못하고 산에 내다 버리고는 "왕자 죽었어요~ 퀘스트 끝. 보상 감사"로 마무리 지어버린다.
당연하지만, 파리스는 지나가던 목동1에게 구출되어 목동으로 살아간다.


이쯤에서 끝나면 해피엔딩이었겠는데, 아직 발단의 초반부. -_-;;
배경이 살짝 신들의 사회, 올림푸스로 넘어가보자.
이번에는 바다의 신이 딸내미를 낳았는데, 마찬가지로 신탁이 하나 쫓아내려온다.
"이 아이가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보다 훨신 잘난 놈이 될 것이다"라고.
그러다보니 신의 딸이니만큼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는 이 테티스라는 여신은 눈을 낮춰 인간과 결혼하게 된다. 자기보다 잘난 놈이 나온다는 말에 그 여자 밝힘증의 제왕 제우스도 손을 못댔다니까.
그래도 신이 눈을 낮춰서 결혼하는게 인간이다보니, 인간중에선 그나마 잘났다고 하는 녀석중 하나인 왕과 결혼하게 된다.

떠들석하게 잔치를 열면서 초대장을 보내는데, 당연히 결혼 잔치는 재밌으라고 하는 법.
꼴보기 싫은 사람이나, 불러봐야 안좋은 일만 일어날 거 같은 사람은 빼놓고 부르기 마련이다.
자연히 "불화의 여신"이라는 멋들어진 타이틀을 단 에리스 님께선 초대 회원 명부에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불화의 여신은 아무나 못된다는 걸 증명하듯이,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이 여신이 결혼식에 쳐들어온다.
잔치에 들어서서는,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사과를 보란듯이 치켜들고 외친다.
"이 황금사과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것이다!" 라고.
그리고는 황금사과를 사르르 굴리니,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굴러간 황금사과가 제 자리라고 딱 멈춘 곳에 세 명의 여신이 서 있더라.
바로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 전쟁과 승리의 여신 "아테나", 그리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불화의 여신의 솜씨는 역시 알아줘야 한다.
101동 아파트 아줌마, 102동 아파트 아줌마, 103동 아파트 아줌마 셋이 있는 곳에서 102동이 제일 비싸고 살기도 좋지요~ 라고 말하면 바로 양쪽 아줌마 눈총에 구멍이 뚫릴테니까.
제우스에게 황금사과를 건네주며 "자, 당신의 선택은?"이라고 물어보면, 제우스 아저씨도 영락없이 대대장 3명 사이에 끼어서 "자네, 어느 대대가 제일 좋은가?"라는 질문 받는 일병의 기분을 알 수 있겠지.


곤란해하는 제우스의 눈에 띈 구원자가 바로, 산에서 양치며 살아가는 파리스다.
"자 봐라, 저 아저씨는 지가 왕자였다는 것도 모르고 살고 있다. 쟤한테 물어보면 어줍잖게 위세에 눌려 머리굴리는 아부가 아니라 진실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꺼임" 이라는 명분을 대고, 결정권을 넘겨버린다.

하지만, 막상 갔더니 당연히 외모로 따지면 미의 여신이라는 아프로디테가 나을 수 밖에.
말 한마디 못해보고 뺏길까봐, 각자 자기 PR의 시간을 가진다.

헤라 : 인생사 권력이 짱임. 귀찮게 선거기간에만 국민의 일꾼..어쩌고 이딴거 필요없이 무조건 님 좀 짱 해줌. 쇠고기 수입 맘대로 하고 운하도 맘대로 팜.

아테나 : 어허, 요새 뉴스 안봤음? 정치인도 싸움 잘해야되는거임. 황금 사과 주면 어떤 놈이든 님 앞에 일초지적도 안됨.

아프로디테 : 세상에서 젤 예쁜 여자랑 소개팅 해줌. 원하면 결혼도 시켜줌. 말만 하셈.

목동으로 순진하게 살고 있던 파리스.
권력도 모르겠고 목동이 국K-1 진출할 일도 없을테니 예쁜 여자가 장땡이라, 아프로디테에게 덥썩, 황금사과를 헌납한다.
저런. 당신 지금 트로이를 잿더미로 만드는 횃불에 불을 당겼다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헤라와 아테나는 분노에 떨면서 올림포스로 돌아간다.


자, 그럼 아프로디테가 말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는, 여성밝힘증에서 따를 바가 없는 제우스의 수많은 자녀중 하나인 헬레나다.
제우스의 모든 자녀들이 신이었다면 만신전으로도 부족했을 것은 당연지사. (물론 올림푸스에도 제우스의 자녀들 수가 제법 되는 건 사실이다)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던 헬레나는 어렸을 때 부터 뛰어난 미모로 그리스 전역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그 증거로 로리콘 테세우스에게 납치되어 야금야금 키워 잡아먹힐 운명에 놓일 뻔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절세미녀가 결혼할 때가 되자, 그 이름을 들어봤다는 쟁쟁한 작자들이 죄다 모여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 파리스는 아직 헬레나라는 여자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시절이라 이 자리에 들어가진 못했다.

무슨 왕 전시회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이름있다는 무슨 무슨 왕들이 모여 있다 보니, 헬레나를 결혼시키려던 부모가 덜컥 겁이 난다.
황금 사과처럼 누군가 한 명이 차지하는 순간 바로 분위기 안좋아지는거 아닐까 걱정될 수 밖에.
그래서 구혼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누가 선택되든 뒷담화 안함. 혹시 어떤 넘이 난 이결혼 반댈세 외치면 다함께 몰려가서 즐겁게 밟아주기"로 맹세를 시킨다.
맹세가 다 끝나고 나자 헬레나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결혼하여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는 두 번째 찬스를 무시하고, 파리스는 마침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사실 내가 니 형이다."
그래서 나름 제왕수업이랍시고 여기저기 놀러다니던 파리스가 스파르타에 들르게 되고, 헬레나 보고선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여버린다.
유부녀? 그게 대순가. 아프로디테 티켓이 있는데.
남편이 출장간 사이, 마찬가지로 눈이 뒤집혀버린 헬레나가 쪼르르 파리스를 쫓아서 트로이로 야반도주를 해버리게 된다.
당연히 스파르타는 난리가 났다.
뭐 한 48182312번째 아내가 다른 남자랑 도망가더라도 왕 체면에 그냥 못넘어가는데, 자그만치 세상에서 제일 에쁘다는 아내가 도망가버린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메넬라오스 왕, 트로이? 그까이꺼 단 번에 없애주마! 라고 외치고 달려나가려는 찰나에 떠오른게 바로 헬레나랑 결혼할 때 했던 맹세다.
그 때 구혼자들도 "즐겁게 밟아줄 놈이 나타났으니 함께 갑시다. 안가면 너 부도수표라고 소문냄"라는 권유에 즐겁게 룰루랄라 트로이를 밟아주러 나선다.



그런데 트로이를 함락시키기가 만만치가 않다.
바다쪽은 드높은 성벽이 굳건히 지키고 있고, 육로로 계속 보급을 받다보니 도저히 단 시간에 점령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라는 건 뒷사람들의 제멋대로의 해석이고.
사실 신화시대에 중요한 건 신들의 가호인데, 올림푸스에서도 지들끼리 이쪽 저쪽 편을 갈라서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간세상에서도 트로이 전쟁이 질질 끌어 자그만치 10년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목마 전법.
성 앞에 목마 세워두고 모두 퇴각해 버리자, 스파르타 군이 선물주고 간 것이라고 생각한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성 안에 끌어다 놓는다.
밤이되자 조용히 목마에서 나온 스파르타 병사들이 성문을 활짝 열어버리자, 그 뒤는 처절한 트로이의 패배.
결국 예언대로, 트로이는 파리스의 덕분에 잿더미가 되는 운명을 맞았다.


10년동안 자기 버리고 도망간 헬레나에 대해 복수심을 불태우던 메넬라오스는, 정작 헬레나 보고는 다시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다시 스파르타로 데리고 간다. -_-;;;;
외모지상주의는 최근의 물질주의적 세태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원전부터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신화를 읽고서 "와~ 재밌다"로 끝나는게 보통이다.
어릴적의 슐레이만도 그랬을 듯.
그런데 이 슐레이만 아저씨가 자수성가하면서 백만장자가 되어버리자, 어릴적 이야기가 떠올랐나보다.
주머니에 돈 생기고 나니까 "내 생각에 그거 진짜일거 같음. 우리 같이 삽질해보지 않으련?"이라고 나선 것이다.
뭐, 백만장자가 된 슐레이만씨, 돈도 있겠다 취미생활로 삽질도 시작하게 됐고.

.......사실 이 때 까지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슐레이만을 비웃었다.
동화라고 들려줬더니 다큐로 듣는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이미 알다시피 트로이 전설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이다.
어...다큐가 맞았네. 라고 후회해봐야 이미 끝난 얘기.
슐레이만 아저씨는 트로이 유적지에서 발굴한 막대한 양의 보물도 함께 파내고, 고국에 기증한다.


트로이 유적지는 총 7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7개의 문화와 생활권이 그 위를 거쳐갔다는 이야기라니, 나름 유리한 지형조건과 함께 번성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고고학적 배경이라곤 전혀 없는 평범한 한국인은 그냥 숫자 써붙여 놓은거 보고 알 수 있을 뿐.


이쪽 지형들도 마찬가지로, 저 멀리 보이는 들판들은 사실 원래 모두 바다였다.
지형변화로 인해 지금은 들판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엔 저 곳에 그리스 군선들이 떠서 이 쪽으로 불화살을 날렸다는 소리.


자,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목마...는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오기는 하는데, 하도 볼 게 없으니까 터키 관광청에서 만들어둔 것이라고 한다.
...근데 왜케 볼품없니;;;


당연하지만, 역사적 고증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그냥 상징으로써의 목마다.
일단 내부는 들어갈 수도 있고, 바깥을 내다볼 수도 있음.


목마를 끝으로 트로이 구경을 마치고 나면 다시 이스탄불을 향해 주욱 북쪽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도중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는 정기선.


뭐 사실 별 건 없고, 그냥 배 타고 해협을 하나 건너가는 셈. -ㅅ-;
마찬가지로 해협을 건너기 전엔 아시아였고, 건너면 유럽 대륙에 도착한다.



텅 비어있는 조타석.
완전 자동 무인 항해가 가능한 최첨단 배...는 아니고;
배 자체가 좌우대칭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방향에 따라 선장 이하 승무원들이 어느쪽에 있느냐가 결정된다. -ㅅ-;;
이 쪽은 배 뒤쪽에 위치한 조타석이라 텅텅 비어있음;;


그래서 굴뚝이 가운데 있고, 양 쪽으로는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ㅅ-a;;


바다를 건넌다고는 하지만, 두 대륙 사이가 가깝다보니 금방 육지 양쪽 끝이 잘 보인다.
뭐, 그렇다고 한강 건너듯이 순식간에 건넌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역시 바다라고, 갈매기들 사진.
그러고보니 남들 다 한다는 인천가서 갈매기 사진 찍기도 못해봤는데, 터키 땅에서 한 번 해보는구나;


부두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쬐끄맣다. -ㅅ-;;;
뭐, 항구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무역항이 아닌 이상에야...
동네 포구 정도 되겠지 싶은 아담한 곳이다;;


이건 접안 시도중인 선장님.
반대쪽 선원실의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기구들도 똑같이 생겼다.
한 쪽이 고장났을 땐 편리하겠군 그래;


역시 항구라고 하기엔 생각보단 훨씬 덜 번화한 모습이다.
시외버스 터미널 정도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줄지어 서 있는 버스나, 음식점 등등..
아마 이 배를 타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자, 오늘의 점심도 현지식이다.
분명히 식당이 있는 음식 종류는 저렇게 많은데, 정작 주문되어 나온 건 첫째날 식사와 같은 종류였다.
가이드님께서 그나마 한국인이 먹을만한걸 골라 준 건지, 메뉴에서 제일 싼 걸 골라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좀 색다른게 먹고 싶은데...
후다다닥 입 안에 털어넣고, 동네 항구 마실나가본다.


휴대폰 판매점.
나름 소니 / LG의 안드로이드 폰들을 전시 및 판매하고 있었다.
국내처럼 휴대폰 전문점이라기보단, 이런저런 소형 가전들도 함께 팔고 있었던 걸 보면, 아직은 고급 휴대폰 수요가 그다지 많진 않을 듯.


자가용 주차하는 것 처럼 작은 보트들도 항구 한 편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ㅅ-;
지금이야 겨울이니 마실나가지 못하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저런 보트를 타고 놀러다니기라도 하는 걸까;;
어쩌면 고기잡이에 쓰는 배일지도...? -_-a


하지만 이 쪽에 있는 배들이 현업에 종사하는 배들이지;;


후다닥 둘러 보느라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망원으로 땡겨 찍은 건축물.
음...뭐랄까, 남대문처럼 뭔가 기념물인거 같긴 한데, 자세히 둘러 볼 시간은 없었다. -ㅅ-;;


버스로 돌아가려는 길에 만난 터키 청년 두 명.
알고보니 군인으로 복무중이라고 한다.
터키도 우리나라처럼 강제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혹시나 싶어 "어때~ 너네는 군대 가는거 좋아하니?" 라고 물었더니

"헐-_- 설마-_- 그럴리가-_-"
라는 성실한 답변 -ㅅ-;;

이런 저런 잡담 조금 나누다가, "피리 레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헤어졌다. :)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래도 상점 점원 뺴곤 첫 터키인과의 대화였....쿨럭;;;


이 동상의 아저씨가 피리 레이스라는 제독이다.
16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 해군 제독으로 복무했던 아저씨인데, 군인이긴 하지만 어딘가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1929년, 이 아저씨의 이름이 적힌 지도가 발견되었을 때 당시에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수십년 뒤, 이 아저씨의 지도가 항공기 관측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터이다.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 학자들이 이 지도를 조사하던 중, 어디의 지도인지 알지 못했던 곳이 바로 남극 대륙을 그린 것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진다.
더더욱 놀라운 점은,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 대륙의 현재 해안선이 아니라 바로 그 얼음 밑의 지표면이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
16세기, 바람을 원동력으로 삼은 돛단배가 다니던 시절에 어떻게 그런게 가능했을까?
남극 대륙의 얼음층이 지구의 나이테와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왔다는데, 그럼 피리 레이스 제독은 어떻게 그 밑에 있는 지형을 알 수 있었을지.

한 가지 밝혀진 사실은, 이 지도는 피리 레이스가 직접 작성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해군 제독의 위치에 있었던 이 아저씨의 취미가 지도 제작이다보니,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자료를 한군데 모아 그린 것이 이 지도라고 한다.
과연 어찌된 것인지, 이는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혼자 밍기적대고 있다가 황급히 돌아가서 버스에 올랐다.
점심 이후는 해가 짧은지라, 이스탄불까지 얼마 안걸려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해가 넘어갔다.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밤은 벨리댄스 구경으로 예정되어 있다.



30유로라는 어마어마한 값을 내고 보러 간 만큼, 와인 한 병과 함께 안주를 준다.
알고보니 식당도 겸하고 있었던지라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음, 뭐랄까. 사실 자리는 그닥 좋다고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공연인만큼 그렇게까지 많이 신경쓰이는 건 아니다.
옆 자리긴 해도 무대 바로 앞이었으니까.
운 나쁘게 구석 테이블을 할당받았다면 억울했을지도.


벨리 댄스 뿐만 아니라, 민속춤인듯한 몇몇 공연도 함께 보여줬다.
음....뭐 축제때 추던 춤,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냥저냥 볼만 했다.


벨리댄스는 단체가 아니라 혼자서 공연했다. 원래 그런건가? -_-a


공연을 마친 무희는 이렇게 객석으로 나와서 사진을 같이 찍고, 팁도 받아간다.
당연히 사진은 유료;;;;


혼자서 춤 추다가 객석으로 잠깐 내려오거나 쉬는 시간에 한 바퀴 돌기도 하는데...음;;
좀 민망한 모습을 많이 연출해서 깜짝 놀랐음;;;;;;;


공연 다 보고 나가는 길에 찍은 입구. -ㅅ-;

공연까지 다 보고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덧 12시가 넘어있었다.
아, 마지막 밤이구나하는 감흥도 없이, 마찬가지로 쓰러지자마자 잠들어버린다.
좀 아쉽기도 하고..뭔가 열심히 돌아다닌 거 같은데, 정작 본인은 버스에 앉아서 경치구경만 했던 터라 느낌은 너무 편하게 다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어쨌든, 오늘이 마지막 밤이고, 내일은 오전에 성 소피아 사원을 본 뒤 한국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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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라는 지명은 파묵 + 칼레의 두 단어가 합쳐져서 붙은 이름이다.
직역하면 목화 + 성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실제로 어떻게 생겼느냐면..


목화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흰 색으로 뒤덮인 절벽이다.
파묵칼레는 온천이 절벽 위에서 나오다보니, 석회질이 함께 녹아나왔다가 절벽을 타고 내려가면서 하얗게 굳어 이루어진 지형이라고 한다.
뭐, 이 사진은 지나가면서 밑에서 한 장 찍은 것 뿐이고. -ㅅ-;

말했다시피 절벽이다.
절벽을 구경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아래에서 위로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과, 위에서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구경하는 것.
당연히, 버스가 있는 일행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 지는 자명하다.



절벽 위로 올라가면 이처럼 멋들어진 건물이 세워져있다.
입구 겸 상점가 겸 화장실 겸...기타 등등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들이다.
역시 유네스코 지정, 자연 유산과 문화 유산으로 함께 인정받은 복합 문화유산!
..하지만 여전히 입구는 바코드 방식의 티켓. -ㅅ-;;; 은근히 신경쓰이네 이거;


현대적 건축물은 입구까지만이고, 들어서면 이처럼 나름 고대 건축물들을 복원해놨다.
파묵칼레가 온천 휴양지로 각광받기 시작한 건 자그만치 그리스/로마 시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곳 앞에서 어느 온천집이 원조를 주장할까나 -ㅅ-;


온천 휴양지라는 의미는, 돈 있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아낌없이 주머니속 먼지까지 털어 내 준다는 의미다.
당연히 그리스 / 로마 시절의 유물들도 왠만한 대도시 수준으로 남아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고고학적 가치를 가진 유물들이 아낌없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물론, 현재도 발굴은 진행중.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
새하얀 석회붕이 마을을 감싸듯, 내려간다.


이렇게 왼쪽 적벽으로만 출입이 가능하다.
오른쪽 절벽은 자연 환경 보호를 위해 출입 금지.
옛날 사진들을 찾아보면 오른쪽 절벽에서 수영복 입고 몸을 푹 담그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지금은 그 수량이 많이 줄어들어 몸을 담그기는 커녕, 발목 위쪽으로 간신히 올라올 정도인데다가, 목화의 성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색 마저 심하게 바래버렸다.


그나마 왼쪽 절벽에도 저렇게 물이 차 있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라지만 그래도, 수량은 역시 안습;;;


옛날같으면 수영복 입고 돌아다녔겠지만, 이젠 이렇게 무릎까지만 걷고 걸어가면 된다.
참고로, 파묵칼레의 하얀 석회붕 지역은 신발신고 들어갈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 환경 보호가 목적이라고 하며, 가능하면 신발 넣을 수 있는 간단한 종이 / 비닐 가방 정도를 준비해두면 편하다.


이 날 날씨는 아침부터 비.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하고 흐리멍텅하고...아무튼 사진 찍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음.


온천수에서는 석회 성분만 나오는게 아닌 모양인지, 중간 중간 이렇게 녹색으로 물든 부분도 보였다.
음, 무슨 성분으로 저렇게 녹색이 된걸까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뭐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녹색 = 유해성분 일 리는 없으니까 -ㅅ-a;;


이 사진은 오른쪽 절벽 사진이다.
물은 전혀 고여있지 않다.
이게 다 아래쪽에 있는 관광호텔에서 마음대로 온천수를 뽑아 쓴 탓이라고 하니....음. 우리가 묵은 관광호텔도 그 중 하나일테니 뭔가 좀 찝찝하다;;


겨울철인데다 비가오다보니 날씨는 상당히 추웠다.
왼쪽에 고여있는 물도 온천수라기보단 대부분 비로 인해 고여있는 물들인지, 마찬가지로 차갑다.
대신, 오른쪽에 있는 도랑처럼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는 물이 온천수다.
저쪽 멀리 있는 사람들도 걸어가다 추우니 온천수에 발 담그고 있는 중.


온천수는 저렇게 절벽 꼭대기부터 흘러 내려온다.
도랑 타고 내려오다가 일정 부분에서는 절벽 쪽으로 살짝 넘쳐 흐르기도 한다.


그야말로 콸콸콸콸 흘러내리는 따뜻한 온천수.
뭐, 몸에 좋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이 물 받아다 중간에 욕조라도 채웠으면 좋겠건만....
겨울에 따뜻한 물에 온천욕 하고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만 하고 그냥 석회붕만 걸어다녔다;


몸을 담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쳐다보던 오른쪽 절벽. -ㅅ-;
뭐 영화라도 한 편 찍으면 멋진 장면이 나올거 같다.


아침에 좀 일찍 나온 편이라, 다른 관광객들이 그닥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위쪽부터 슬슬 관광객들의 레이드가 시작되고 있다.


온천수가 오른 쪽 절벽으로 넘쳐 흘러내리는 쪽은 이렇게 기묘한 무늬가 형성되어 있다.
마치 물고기 회를 여러 개 겹쳐놓은 듯한 느낌.....-ㅅ-;


비 내리는 우중충한 하늘이었지만, 중간 중간 이렇게 햇볕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때마침 오른쪽 절벽에 해가 비치길래 한 장.
환한 햇볕 아래서 하얗게 빛나는 절벽의 모습은 목화의 성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저렇게 온천수를 따라 아래로 주욱 내려갈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내려갔다가 갔던 길을 그대로 다시 올라와야 한다.
거기다 몸이 안좋은 걸 증명이라도 하는지, 온천수라는 작가가 지표를 대상으로 그려놓은 추상화는 꽤나 발바닥을 아프게 하고 있었으니까.
멀리 가면 갈 수록 올라올 때도 아플 뿐 -ㅅ-;


온천의 광고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치료 효과가 빠지지 않는다.
그 덕택에 파묵칼레도 로마시절부터 병원들이 즐비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저렇게 폐허만 남아있지만.


안쪽으로는 뭔가 복원이 진행된 건물들도 있었지만,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로마 유적지라면 빠지지 않는 대극장도 저 멀리 보인다.
그래도 저런 데 가 볼 시간은 없다는 가이드의 재촉에, 그냥 멀리서 사진만 한 장. -ㅅ-;


아래로 내려온 마을에서 올려다 본 파묵칼레 절벽.
저 위에 정말 성이라도 하나 멋들어지게 지어놓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열씨미 버스를 달려 이동하던 중, 뭔가 가죽 제품을 판다는 곳으로 갔다.
.......-ㅅ- 뭐 사주고 싶을 정도의 옷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가격표를 보는 순간 구매 의욕은 0%로 감소.
동물원에서만 봤던 공작새를 정원에 풀어 기른다는게 신기해서 사진 한 장;


그리고 점심 먹으러 들른 곳은 한식을 주는 한국 식당. -_-a
뭐, 여행가서 한식 먹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대충 때우고 바로 나와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길 건너편에는...동네 놀이동산? 으로 보이는게 있었다.
음...여기 바이킹을 타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려면 상당한 현실 부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만;


여기가 밥을 먹은 한국 식당.


바로 옆에 있었던 모스크, 그리고 공동묘지.


그리고 또다시 버스에 올라 열심히 달려간 곳은 에페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항구 도시로 시작해 로마시절의 여러 유물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의 앞 부분이 투르크 제국 시절을 볼 수 있는 관광지였다면, 이 곳은 로마 제국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장소.


과연, 군데군데서 서 있는 기둥들은 상당한 규모의 건물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동 파이프들은, 역시 로마 유적답게 상수도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물이다.


뭔가 새겨놓은 모양이 남아있는 대리석.
이 시절, 그리스, 로마에서는 아직 숫자 0이 쓰이지 않았던 것이니, 저건 글자 그대로 뭔가 세기 위해 남겨놓은것인지 싶다.
그나저나 대리석이 얼마나 남아돌았으면 이 사람들은 저 기둥들을 죄다...-ㅅ-;


그렇다곤 해도, 제모습을 완전히 유지하고 있는 기둥들은 없다.
에페스 유적도 발굴된 유물들을 하나 둘씩 모아 복원하고 있는 중이니까.
아직 그 제 짝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레고 블럭 취급받는 조각들이 더 많다. -ㅅ-;


그리스 시절과 로마 시절 유물들이 뒤엉켜 있다보니, 아무래도 현대를 살고있는 정상적인 한국인 입장에선 그 둘을 구분하기가 어려운게 사실이다.
그래서 간단히 구분하기 위한 건축학적 tip.
위 사진에서처럼 양 뿔과 같이 둥글둥글한게 보이는 건 그리스 시절의 건축물들이다.
전문용어로 이오니아 양식. -ㅅ-;


저 멀리 보이는 기둥 역시, 이오니아 양식이 쓰이고 있다. 즉, 그리스 시절의 유물이라는 소리.
앞 쪽에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그리스 시절인지, 생각했던 것 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하긴, 그리스는 거대 국가라기보다는 도시국가로 번성했던 곳이니까.


퍼즐의 모든 조각을 찾아 멋지게 조립하면 좋겠지만...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뭐, 어쨌든 관광객들은 끌어모아서 보여줘야하겠고..하다보니 저렇게 중간중간, 콘크리트로 복원해놓은 모습도 보인다. -ㅅ-;;;
음..안타깝기도 하지만, 사실 감동이 살짝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걸어가면서 만질 수 있는 대리석 기둥들은 그 하나 하나가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에 세워졌던 것들이다.
콘크리트가 중간중간 개입하긴 했지만, 나름 그리스 / 로마 시절의 도로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곳도 많다.
상상력을 살짝 발휘해서 지나가는 다른 관광객들에게 토가를 살포시 걸쳐주면, 로마에 관광온 듯한 느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


안습의 콘크리트...ㅠㅠ
그래도 그나마 저렇게 알 수 있게 된거지;


콘크리트 뿐만 아니라 저런 보조물 역시 쓰인다. -ㅅ-a


에페스에서 제일 유명한 유물 중 하나인 니케 여신 부조.


가까이서 찍은 사진이다.
워낙 유명한 조각이다보니, 역시 여기서 설명하는 다른 여행 가이드들이 많았다.


자세히 보면, 왼쪽 면에 지팡이를 감고 있는 뱀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 오른쪽의 모습은 아스클레피오수의 형상으로 짐작되는 이 것은, 바로 병원을 나타내는 표지판이다.




뭔가 쓰여있는 라틴어
알파벳의 기원인만큼 당연히 그 모습은 닮아있지만, 아무래도 읽을 수는 없다. -ㅅ-;
이 글자들도 기원 전부터 현대까지 남아있다는 걸 생각하면 고고학적 가치는 상당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초등학생의 일기...뭐 이런 건 아니겠지. -_-;


창살 안에 모셔놓은 유물들도 있었는데..아무래도 중요하니까 안에 넣어뒀겠지 -ㅅ-;


요샌 그래도 인간들이 좀 적게 오네~ 라면서 구석구석에 쉬고 계신 고양님들.


여기서부터 내려가는 이 길이 당시의 번화가.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마찬가지로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인 셀수스 도서관이다.
로마 시절에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건물이다.


바로 이 기둥 양식이 로마 건축물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코린트 양식이다.


위에도 잠깐 나왔던 이 모자이크 도로가 로마 시절 행인들이 다녔던 보도이다. 관광객들이 다니는 곳은 마차가 다녔던 곳.
지금은 모자이크 보호를 위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법.
고양님들은 역시 특등석에서 인간구경하며 여유있게 지내고 계신다. -ㅅ-


마찬가지로 그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신전.
첫 번째 입구에 새겨진 것은 운명의 여신 테티스.
안쪽 문에 새겨진 것은 메두사.


로마 유적지에 빠지지 않는 공중화장실도 있었다.
화장실에 칸막이가 없다보니, 로마 사람들은 여기에 앉아서 국정의 대소사를 이야기 했을지도;
하복부에 힘 주면서 서로 얘기하는 걸 상상하.....쿨럭;
아래쪽에 조명까지 설치되어 있는 건 누구의 발상일까;


셀수스 도서관은 복원된 모습이 매우 거대하다.


하지만 뒷면은 예상 외로 초라함..-ㅅ-;
알고보니, 원본은 복원을 맡았던 오스트리아의 복원팀이 가져가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고, 여기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그렇다곤 해도, 그 위용이 어딜 가는 것이 아닌지라.
이런 모습의 도서관이라면 정말 하루종일 가서 책만 보다 오고 싶을지도.


한 가지 웃기는 건, 도서관 정면에 홍등가가 위치하고 있었댄다.
이 사진이 도서관 정면에서 바라보고 찍은 사진인데, 왼쪽에 보이는 검은 구멍은 홍등가와 도서관을 이어주는 직통 통로였대나. -_-;;


앞에 있는 건 이오니아 양식 기둥. 뒤에 있는 건 코린트 양식.


도서관 옆으로는 에페스 대극장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로마 시절의 광고판...이라는데.
설명하는 건 가이드마다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어쨌든 중요 요점은 홍등가 광고핀이라고 함;;;


그리고 에페스 관람의 대단원. 바로 대극장이다.
2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좌석은 어마어마했다.
아, 물론 돌 의자니까 깔개 정도는 알아서 준비해와야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겠지만.


이건 무대 뒤쪽, 즉 배우들이 대기하거나 무대장치가 놓여지는 곳의 모습.


에페스 대극장은 현재로도 공연장으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퀸이나 마이클잭슨이 이 곳에서 공연을 했다고.
동굴도 아닌데 가운데서 조금만 크게 말하면 목소리가 울리는 게, 역시 극장이구나~ 싶었다.


극장의 바로 뒤편은 원래 바다였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위쪽의 길이 대극장과 항구를 이어주는 도로였다고 하니.
이 곳에서의 공연은 분명 파도소리를 실은 해풍을 타고 관객석까지 올라왔겠지.


하지만 지금은 지형 변경으로 인해 바다는 저 멀리 4km 정도 밖으로 밀려났고, 언덕과 잔디밭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터키가 지진이 심한 나라라고 하더니..쩝.


하지만 신기하게도, 대극장을 나서면 파도소리가 들린다.
정확하게는 파도소리가 아니라, 근처 나무들이 들려주는, 바람에 나뭇잎이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다.


에페스 관광까지 마치고 나면, 아직 해가 떠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치 관광은 끝.
슬슬, 터키에 관광하러 온 건지, 버스 타러 온 건지 의심도 하게 될 정도. -_-;;
따져보면 뭔가 보는 시간 보다 버스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더 많다!;;;
하긴 뭐, 땅덩어리 넓은 나라를 보려면 어쩔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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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의 기상 시간은 다른 곳보다 훨씬 빠르다.
아침 일찍 열기구 투어를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열기구 투어는 아침 해가 뜨기 직전까지 기다렸다가, 일출과 함께 카파도키아의 계곡을 구경하게 된다.
물론, 서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맑고 투명한 대기를 자랑하는 카파도키아의 드높은 창공에, 열기루를 타고서.
풍선에 의지해 파란 하늘에 올라, 컴컴한 대지가 아침 첫 햇살을 받아 발갛게 깨어나는 것을, 계곡 사이로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살이 '5분만 더'를 외치는 바위틈 새로 속삭이는 데 함께 하러 가는 것이다.

계곡 사이로 기구를 타고 들어가는 것 때문에 위험해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고, 160유로라는 거금을 내고 뭣하러 그런 위험 체험을 하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뭐, 이런 거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음? -ㅅ-a


아침잠이란 녀석과 상당한 친분을 자랑하고 눈꺼풀 무게로는 전세계인들과 경쟁할만한 자질을 지니고 있지만, 과연 160유로의 위력은 대단했다. -ㅅ-

어찌어찌 눈을 뜨고 봉고차에 몸을 실어 위와 같은 여행사로 왔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여기저기서 열기구 투어를 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행사 안에서는 이처럼 바구니를 뚝 반으로 잘라 만든 데스크에서, 아저씨가 차 / 커피를 나눠주고 있었다.
한겨울의 추운 날씨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네들 매출 올려주러 온 여행객들을 위한 서비스. -ㅅ-;;


도착했을 때는 컴컴한 새벽이었지만, 어느 새 해가 조금씩 뜨기 시작했다.


이렇게 차 뒤에 매달려 있는 것들이 바로 바구니. 열기구 밑에서 사람들이 타게 되는 탑승기구다.
당연히, 지금쯤이면 바구니 앞에 매달려 등떠밀리고 있는 자동차를 타고 열기구를 날리러 가야할 테지만....

기상조건이 안좋아서, 정확히 말하면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흑흑 ㅠㅠ


그리고 여행사 앞에서도, 여행사 안에서도, 영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터키어....그리고 그 외 알 수 없는 언어로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기상 이변에 안타까워하는 국제적인 단결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 거기서 한 명 정도 빠진다고 해봐야 Control weather 주문이 완성 직전에 실패할 것도 아니니, 살짝 빠져나와 주변 구경이나 해본다. -ㅅ-;



저 윗사진과 비교해보면 어느새 태양이 높이 솟아오른 걸......
하지만 여전히 바람은 거셀 뿐..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터키 국기가 맹렬히 펄럭이고 있었다. ㅠㅠ


현지 여행사 직원 아저씨들도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앉아 근심어린 걱정으로 하늘을 쳐다본다.
"어이~ 오늘 장사 접는거 아냐? 매출 울리긴 글렀구만~"


그리고 그 쪽으로 일본인 여자 관광객 둘이서 접근하고 있었는데..


왜 출발 안하는지, 날씨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는 듯 하다.
나중에 다른 직원분을 통해 들은 얘기는, 한 5일 동안은 바람이 거셀 듯 하다고 한다. -ㅅ-a;;


그리고 마침, 카메라 취재를 하러 온 어딘가의 텔레비전 방송국.
근처에 있는 직원들과 얘기하다가..



아까 그 일본인 아줌마 둘을 발견하곤 뭔가 취재를 한다.
-ㅅ-; 하지만 일본인 아줌마는....일본어만 할 줄 알고, 터키 아저씨들은 터키어만 할 줄 아는 상황인듯.
뭐라 의사소통은 안되고 마냥 웃다가 지나간다;


그리고 보조 인원인 듯, 인터뷰 광경 옆에서 카메라로 찍던 분이...


갑자기 카메라를 돌려 들이대길래 마주 찍어줬다. -ㅅ-;
설마 전파 타는거 아니겠지 이거;;;



아무튼, 기다리다가 결국 고대하던 카파도키아 열기구 투어는 취소.........ㅠㅠ
아 흑흑흑. 잔뜩 기대했었는데....
아침잠 씨가 "거봐, 나 버리고 가더니 쌤통이다~"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네.



겨울이라 날씨가 춥다보니, 고양이 세 분께서 호텔 출입구 앞을 점거하신 모습.
여유있게 스트레칭도 하고 계시다.
가까이 다가가려니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진 찍지 마! 찍지 마! 성질 뻗쳐서.."라며 거부하시는 걸, 식당에서 가져온 치즈 조각을 상납하며 간신히 접근해서 찍은 사진이다;
나중에 호텔 체크아웃 하고 버스타러 가는데도 계속 나만 바라보며 눈빛공격을 하는 걸, 어쩔 수 없이 뿌리치고 나왔다;;

열기구 투어도 무산되고, 오늘 오후 일정은 열심히 버스를 달려 파묵칼레로 이동하는 것.
그리고 땡이다. -ㅅ-;;;
하루 종일 이동하는 것으로 오늘치 할 일은 끝이 나는 셈;;;


지나가다 본 채석장 광경.
터키에서도 질좋은 대리석이 난다 하더니, 혹시나 그런 대리석을 캐고 있는 곳이었을까.


점심먹고 휴게소 들렀더니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저물고 있다.
왠지 손해본 것 같은 하루가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ㅠㅠ


이건 휴게소에서 본 충전기 사진.
아마도 오른쪽에 동전을 넣고 일정 기간 동안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듯 하다.


단자 종류가 엄청 많았다;;
Micro USB, Mini USB, iPhone connector 뿐만 아니라 한국 표준의 TTA 24 pin, 20 pin 충전기도 있었다!

그리고 파묵칼레 도착.
뭐 여전히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숙소에 들어가서 짐 풀고, 왠지 억울하다는 표정과 함께 근처 시장 구경을 나선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석류 쥬스.
저 쥬스를 짜는 번개같은 손놀림을 보라!...-ㅅ-;


파묵칼레는 온천이 나오는 휴양지다.
고대, 즉 그리스 로마 시절 부터 온천 덕택에 유명세를 톡톡히 떨쳤던 곳이라고 한다.
호텔도 온천욕을 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고, 동네 가운데에 저런 온천 분수도 하나 만들어놨다.


온천 분수 꼭대기에선 저렇게 하얀 김과 함께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휴양지 겸 관광지다보니 이런저런 기념품 파는 곳도 좀 있었고, 식당이나 주점도 간간히 하나씩 찾아볼 수 있었다.
파묵칼레의 그랜드 바자르...-ㅅ-;;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 건지 어쩐 건지, 의외로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뭐,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선 숙소로 귀환.

잔뜩 기대했던 하루가, 예상치 못하게 이렇게 저물고 말았다....흑흑 ㅠㅠ
내일은 오늘치 만큼 더더욱 볼만한 구경거리를, 파묵칼레에서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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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온다.
편안한 숙소든, 안좋은 숙소든, 아침해는 차별하지 않으니까.
패키지 여행인데 이런 숙소에 묵는단 말이야! 라는 불평을 자기 전에 했던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드는 생각도, 씻으면서 드는 생각도 한결같다.
궁시렁 궁시렁 -_-;;;

어쨌든 씻고 나와서, 밥을 먹으러 내려간다.


어허허...식당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사진에서 빠진 거라면 빵 정도? -_-;;;
빵에 올리브, 치즈 약간 주워먹고 나왔다.
엔간해선 음식투정 안하지만, 한 번 박힌 미운 인상은 "음식도 싸구려일꺼야~ 랩 씌워둔 거 보면 식당에서 하루 재워둔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아침 먹고 숙소 앞에 돌아다니다 발견한 멋진 앤틱 벤츠.
무려 실제로 몰고다니는 차량인 듯 하다.
차에 별로 욕심은 없지만, 손질 잘 된 이런 차를 보니 왠지모를 부러움이 든다.
얼마나 관리를 잘 하고 차에 애착이 있었으면.....

애초에 남들 밥 먹을 시간에 일찍 먹고 나와서 둘러본 거라, 주변을 많이 돌아보지도 못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자유 여행이었다면 근처 다른 식당에 가서 현지식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느긋하게 (아침부터!) 맥주 한 캔 했을지도 모르지만...-ㅅ-;;


어쨌든, 아침에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있는 한국 공원이다.
한국전 당시 터키의 참전에 감사하며, 한국 정부에서 터키 국민들에게 증정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터키에 대한 호칭이 "토이기" 였기 때문에, 보는바와 같이 한국 참전 토이기 기념탑이라 씌여있다.
위에 뺴곡하게 적힌 내용은 당시 참전했던 터키 청년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전사월일이다.


기념탑은 다보탑의 형상을 본 따 만들어졌다.


탑 아래에 있는 비석에는 한국의 묘소에서 가져 온 흙들이 위처럼 안정되어 있다.
이렇게나마 고국에서 쉬시라는 의미겠지.



다시 생각해보면, 총 대신 마우스를 쥘 수 있는 것도, 탄광에서 곡괭이질 하는 대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을 수 있는 것도, 크건 작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의 도움인 게다.
당시 우리나라의 원조는 그런 이념보다는 국가차원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루어진 것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선거때만 봉사한다는 국해의원, 정치가들에게 할 이야기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직접 포탄 사이를 뛰어다니고, 총에 맞아 피흘렸을 사람들, 그 분들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과연 그렇게 말 할 수 있을까?
당신의 희생은 그저 대통령의 기분전환과 경제적 원조를 위해서라고 말 할 수 있을거라고?

당신이 딛고 있었던 땅에서, 60년 후의 아이들이 즐겁게 웃을 수 있게 해준 데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이, 당신의 소중한 미래와 희생 덕택에, 비교할 수 없는 가능성이 피어날 수 있었다는 치하의 말조차 오히려 부족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감사하는 것은 정치 기구나 어느 지위의 대표자가 아닌, 여기에 이름적인 개인 한 명 한명이다.


원래 한국공원 설비가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최근 6.25 발발 60주년을 맞이해서 한국의 높다는 양반들이 온다고 해서 정비했댄다. -_-;;;;
공원 안에 전봇대가 있었으면 뽑을기세로구만;;;


자, 그리고 패키지 여행의 특성상, 들어가지는 못한채 저 멀리서 구경만 했던 아타투르크 기념관이다.
이스탄불에서의 돌마바흐체 궁전도 그렇고, 앙카라의 아타투르크 기념관도 그렇고..왜 패키지 여행은 이렇게 가보고 싶은 곳을 조금씩 빼먹는걸까 ㅠㅠ

아타투르크 기념관은 무스타파 케말, 혹은 케말파샤라고 알려진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여 만든 건물이다.
사진에서는 좀 작아보이는데, 실제 건물은 엄청나게 크다.
당연하지만, 국민을 능멸하는데 있어서 (동성의 대통령이 아무리 본받으려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디의 초대 대통령과는 국민의 존경과 관심의 정도가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 여기에 걸맞을 듯.

못 들어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한국에서 봤던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에 대한 내용은 이런 기념관이 생긴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원래 이 대통령의 이름은 그냥 "무스타파"였다. 뭐 터키에선 매우 흔한 이름중의 하나;;
이래저래 복잡한 가정사 덕택에 어린 나이에 집에서 나와 간 곳은 역시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주는 군사학교.
그리고 자연스레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이 된다.
학교 다니던 시절 성적이 좋았는지, 그 때 별명처럼 붙은 게 "케말"이라고 한다. 터키어로 완벽이라는 뜻이래나..

당시 터키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거의 막바지 시기였는데, 당시 왕이라는 작자가 설치류 근성이라도 있는지, 돌이킬 수 없는 악수를 두고 만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쪽에 서서 참전한 것.
뭐 방법이 없으니 이 사람도 전장에 섰는데, 케말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여기저기서 뛰어난 업적을 거두고, 장군직에 임명되게 된다.
바로 이 "장군"이라는 직위가 터키어로 "파샤".
그래서 케말 파샤를 그대로 번역하면 완벽 장군님...-_-;;;
하지만 장군님 노릇 하던 잘 나가시던 분이,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왕정 제도를 반대하고 나선 탓에 대번에 해임되고 범죄자로 쫓기게 된다.
한국으로 따지면 쇠고기 수입 반대, 부자 감세 반대 등등으로 부족해서 정권 퇴진을 요구한 셈이나 마찬가지.

멍청한 짓하면서 자기 배 불리기 바쁜 정부가 꼴까닥, 나라 말아먹고, 독일의 패망과 함께 터키도 이내 다른 나라에게 합병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때 다시 터키 군에 합류해서 독립전쟁을 지휘하고, 한 때 서울시 정도로 줄어들었던 터키의 영토를 남한의 8배 정도인 지금 크기로 회복한 주역이, 바로 이 무스타파 케말 장군이다.
당연하지만 구국의 영웅 역할을 멋지게 수행한 이 사람이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왕에게 임명받은 장군의 신분으로 왕정제에 반대했던 무스타파 대통령, 취임즉시 개혁안을 선포하고 터키 대개조에 나선다.
오스만 투르크 시절까지만 해도, 터키는 제정일치의 칼리프 제도, 즉 이슬람 국교의 최고 지도자가 곧 국가의 정치적 최고 지도자였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자연스레 제정 분리가 되는 것과 동시에, 터키에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고 비이슬람 신자들에 대한 차별을 없앴다.
또한, 이슬람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표 아래, 일부다처제 금지,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 금지 등을 선포하고 강력하게 추진한다.
뿐만아니라 여성의 참정권도 인정하게 되는데, 이는 유럽의 선진국가들보다 훨씬 앞서서 실시한, 특히 이슬람 문화권이란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개혁이다.
더욱이, 당시 아랍문화권의 칼질해놓은 듯한 문자(...이렇게 밖에 표현이 안된다) 대신, 터키언어에 맞는 알파벳 기반의 문자를 만들고 공식 터키 문자로 채택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의 이름이 그냥 "무스타파"라고 이야기 했던 것 처럼, 당시 터키에서는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이름, 혹은 이름과 별명만 사용했다.
하지만 이 초대 대통령이 성씨 사용법을 추진하고 통과시키면서, 터키 사람들도 성씨를 저마다 하나씩 만들어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초대 대통령의 성씨는 직접 만든게 아니다.
터키 의회에서 무스타파 대통령의 업적에 감사하면서, 만장일치로 '아타투르크'라는 성씨를 만들어 대통령에게 선사한 것이다.
지금도 터키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불리우는 아타투르크라는 단어는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성씨를 가진 혈족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전쟁 당시 아내를 잃었던 이 무스타파 아타투르크 대통령은 그 뒤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
말년에 양녀를 한 명 들이긴 했지만, 양녀라는 부분은 둘째 치더라도 여성의 성씨는 세습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있다.
따라서, 지금의 아타투르크는 성씨이면서도 고유명사가 된,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 대통령을 기리는 단어가 된 셈이다.

온 국민의 추앙받던 터키의 초대 대통령에게서 본받을 점은, 권력자의 위치에 선 뒤에도 부패하지 않았다는 점 아닐까?
당시의 기득권자였던 이슬람 세력은 글자 그대로 뒤통수 맞은듯한 느낌과 함께 대통령을 맹비난하기도 하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부터 쌓아온 부로 회유하려 시도했겠지만 꿋꿋하게 지금의 터키 모습을 완성한 대통령의 모습은 그야말로 정치인의 귀감이라 할 만 하다.

진심으로,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동상을 크게 만들어서, 어느새 투견장으로 바뀐 청와대 한가운데에 세워두고 싶은 심정

자, 들어가보지도 못한 건물 앞에서 혼자 중얼거렸던 내용은 뒤로 하고, 또 버스에 올라 부지런히 터키 남쪽으로 향한다.
아침에 한국공원 달랑 보고 나와서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향하는 목적지는 카파도키아!
.....물론 이대로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볼만한 곳에 한 번씩 들른다.


첫 번째로 멈춘 곳은 소금호수!
아, 소금호수라길래 볼리비아의 우유니!!!를 떠올리는 건 당연지사.
게다가 난 우유니도 다녀왔다구! 라면서 버스에서 내린다.


......뭐임? 이거 나랑 장난하자는거임?;;;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냥 화장실 하나, 1층짜리 상점 건물 3~4채 정도를 세워두고 "자 여기는 소금호수에요~"......라고 합니다. 허허;


그나마 좀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니 봐줄만한 광경이 나온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연출이라는거;;;
실제 광경은 저 제일 윗 사진에 근거한다는 거....;;;
다른 사람들도 별 감흥없이 한 번 보고, 사진 찍고, 걸어들어온다. -ㅅ-;;;

아, 나의 소금호수는 이렇지 않아!! ㅠ_ㅠ

그 다음에 나와서 향한 곳은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 데린구유이다.

그냥 별 거 없는 이런 시골 동네의 지하에 엄청난 땅굴 도시가 숨어있다.
데린구유는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었던 곳이다.
옛날 로마 시절에 천주교 탄압 정책에 의해 잠깐 숨었다가, 히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잠깐 풀리긴 했지만 이내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면서 다시 숨게 된 곳이라 한다.


그냥 동네 창고같은 저 문으로 들어서지만, 그 밑에 있는 지하도시의 실체는 꽤 크다.
괜히 "도시"라고 불리울까.


지금이야 중간중간에 앉는 장소로 이용되지만 예전에는 빨래터, 혹은 식품 저장소로 쓰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마굿간이었을 수도 있다.
입구 가까운 곳에는 실제로 마굿간으로 쓰였다는 넓은 공간도 존재한다.



이 곳에 이렇게 거대한 은신처가 생길 수 있었던 건, 땅굴을 파기 쉬운 재질의 암석으로 지반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그래도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이지, 돌로 만들어진 지하 도시라는 건 여전하다.


게다가 폭은 얼마나 좁고 천장은 어찌나 낮은지.
평균  체형의 한국인조차 움츠리고 허리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뭐...은신처니까 군데군데 통로가 좁아야 한다는 건 이해하는데...;;;
하긴 입구쪽에는 심장마비,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란 경고 팻말도 세워져 있었지;


내부는 이렇게 조명시설을 다 갖춰놔서 전기불은 들어오는데, 그래도 워낙 천장이 낮다보니 사람 그림자에 가려질 때도 많다.
마침 조명등 하나를 챙겨가서 유용하게 썼음.


여기저기 통로가 막혀있고, 또 관광객들에게 모두 공개하는 건 아니다보니, 나왔던 통로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만일 다른 관광객들이 통로를 지나고 있다면 꼼짝없이 서서 지하도시 탐방 행렬이 끊어지길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입구와 출구는 다르게 되어 있다.
이 곳은 출구. 아이고, 정말 파란 하늘이 반갑더라 =ㅅ=;;


고양이님 사진찍으려다 바쁘게 어딜 걸어가시는 모습밖에 못찍었다.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시는 거 보니 뭔가 먹으러 가시는 모양.
물론 밥 때가 되서 배가 고프다보니, 고양이님 발걸음에 감정이입하여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일 수도 있고;;


그래서 이렇게 생긴 식당으로 간다.
지하도시를 본딴건지, 석굴 안에서 밥을 먹는 식당이다.


당연히 탁자도 돌 탁자.


음...뭐 메뉴는 항아리 케밥이라는데, 얘기로만 들었던 항아리 케밥이 이거였어? 라고 생각할 정도로 의외로 좀 시시했다;;
딱히 다른 현지식들에 비해 다른 점도 모르겠고. -ㅅ-a
이 패키지 여행에선 의외로 음식 경험이 그다지 다양하지 못하다. ㅠㅠ

대충대충 밥 때우고 다시 버스에 올라 가다가 다시 잠깐 멈춘다.


바로 이런 낙타모양의 바위가 있는 하멜 계곡.
오, 신기한데?
주변을 돌아보면 이렇게 신기하게 생긴 바위들이 잔뜩 있다.
왠지 모르게 바위로 로르샤흐 테스트 하는 느낌? -ㅅ-a;;


게다가 오늘은 하늘도 파랗게 빛나고 있다보니, 그야말로 눈 닿는 곳 마다 서로 절경임을 내세우며 뽐낸다.
관광나온 한국인들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 찍기에 바쁘고.
이렇게 좋은 날씨에 이 곳에 오는 것 또한 대단한 행운이라고 여겨질 만큼, 멋지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이었다 :)


그 다음에 향한 곳은 파사바 계곡.
버섯모양의 바위들이 있는 곳이다.


멀리서 보면 정말 버섯처럼 생긴 바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인데, 군데군데 들어갈 수 있는 곳들도 있다.


원래 먼 옛날에는 데린구유처럼 바위 안에 구멍을 뚫어 천주교도들이 교회로 이용했던 곳들이다.
세월이 흘러 지진으로 인해 지표 위로 올라오면서 비바람에 노출되게 되고, 풍화작용으로 인해 바위가 깎여나가다 보니 저런 모양이 되었단다.


이런 기묘한 버섯모양이 된건, 바로 바위의 상단부와 하단부의 재질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재질이 다르다보니 풍화작용으로 인해 깎여나가는 정도와 형태도 다르고, 저렇게 기묘한 두 층이 겹친 것이다.
물론 여기에 지진 또한 겹쳐서 지층이 얼키설키 지그재그로 얽혀야 이런 모양이 나오는 거겠지?


가이드 님의 말로는 스머프 작가가 이 곳에 와서 보고는 버섯집에 대한 영감을 얻어갔다고 한다.
뭐, 그럴듯 한데? -ㅅ-a


나름 산책코스(?)가 조성되어 있어서 높은 곳에 올라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도 가능하다.





중간 중간에 덤으로 찍힌 사람으로 크기 비교를 해보면 그 높이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석류주스를 팔던 아저씨.
당연하지만 관광지는 비싸다 -ㅅ-a;;


다시 버스를 타고.....무슨무슨 계곡으로 이동한다;
이 곳 역시 지형변화에 의해 상당히 독특한 경관이 만들어진 곳이다.


계곡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느끼는 건...."춥다" 정도? -ㅅ-;;;
바람이 엄청난데다가, 계곡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사도 상당히 가팔랐다.
자연스레 샌드보드 생각이 난다...쿨럭;


그리고 지나가면서 본 곳은 웃추히사르.
이 곳도 한 때는 바위산 속에 숨겨진 교회였다는데, 지금은 비둘기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아니, 사진 아래쪽의 집은 진짜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저 멀리 보이는 바위산;;


그리고 지나가다 보인 열기구 두 대.
원래 아침에 동틀 무렵에 뜬다고 하는데, 해질무렵에 보이길래 한 장 찍었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는 패키지 여행시 160 유로로 꽤 비싼 가격의 선택관광이지만, 그래도 당연히 이런데 와선 저런거 한 번 타봐야지!

열기구 탑승은 남들 다 하는 시간, 즉 동틀무렵인 내일 아침으로 예정되어 있다. :)


자, 그 다음에 향한 곳은 오늘의 마지막 일정, 카페트 쇼핑이다. -ㅅ-;;;
뭐 패키지 여행이라면 이런 쇼핑 코스는 빠질 수 없다고 하는데;;;


건장한 아저씨 둘이서 카펫을 바닥에 탁탁 털어주고, 한국어를 상당히 유창하게 말씀하시는 분이 우리말로 설명해주신다. 물론 억양은 출생의 비밀을 속일 수 없는지라,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의깊게 집중해야 한다;

뭐, 카페트에 대해 큰 관심도 없을 뿐더러, 매일 청소했던 입장에선 '카페트 = 귀찮은 것' -_-;;;
간혹 무늬가 맘에 드는 것도 있었지만, 성실한 게으름병 환자답게 그냥 덤덤히 보고 넘긴다.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당연히 숙소!
이 때쯤 되니 너무 귀찮아서 다른 사진은 없고, 로비에 걸려있는 사진 한 장만 찍었다.
나이가 많이 들긴 했지만, 이 아저씨가 아타투르크 대통령!
젊었던 시절의 사진은 상당히 호남형인데, 역시 서구형 핏줄이라 그런지 나이먹으면서 급속히 시드는 미모...-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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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가장 일어나기 힘든 날은 언제일까? 라고 묻는다면,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바로 여행 첫 날과 여행 마지막 날이다.
여행 마지막 날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
그냥 그대로 푸욱 잠들어 휴가가 영원히 계속되길 바라는 소망일 뿐;;

여행 첫 날 일어나기 힘든 이유라면, 갑작스레 바뀐 여러 환경과 시차 탓일 것이다.
이동 중간중간, 잠자는 시간을 적당히 현지 도착 시간에 맞춰보겠다고 했는데도, 좁은 비행기에서 갇혀있었던 것이나, 적응하기 어려운 석회질의 미끈미끈한 물로 하는 샤워, 그리고, 무엇보다 4성호텔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좁디 좁은, 그리고 편안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침대의 탓이 크다. -_-a;;;


일어나서 지하에 있는 호텔 식당으로 갔다.
호텔이라고 상당히 깔끔하게 차려놓긴 했지만...종류는 그다지 많진 않았다. ^^;;
그래도 뭐, 종류가 대수인가. 처음 먹는 지중해 식단인걸 :)


터키는 밀을 주식으로 하는, 특히 빵을 먹는 나라이다보니 이렇게 빵들이 꼬박꼬박 나온다.
어느 호텔을 가던 항상 빵이 나오고, 터키에서는 국가에서 빵 가격을 통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쌀 가격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맥락. -ㅅ-a


그리고, 여행 내내 거의 매 끼니마다 즐겁게 먹었던 올리브와 치즈!! +_+
그렇지! 역시 지중해라고 하면 올리브인거지!
여행하는 내내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이런 부페식이라면 특별히 더 사랑해줬....-ㅅ-;;;

의외로 지중해식도 입에 잘 맞잖아~라면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버스를 타러 나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터키의 첫 날은 매우 짙은 안개와 함께하게 됐다.


이스탄불에 깔린 지상철 선로.
저 가운데로 지상철이 다니고 좌 우로 차량이 다닌다.
이스탄불 시민들이 국격에 걸맞지 않게 무단횡단을 제법 하는 편이라 좀 불안해보이긴 했지만 -ㅅ-;; 지상철은 매우 편리해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보니 지하철을 놓을 수가 없어 택한 선택이겠지.
그래도 지하철만 있는 동네에서 살다 온 사람의 로망이랄까, 뭐 그런게 있어서 -ㅅ-a;;;

버스를 타고 향한, 터키 여행의 첫 관광지는 히포드럼 광장.
서기 203년, 로마 시대에 최초로 전차 경기가 펼쳐졌던 곳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오벨리스크와 청동 탑, 그리고 돌로 된 탑만이 남아 있다.



이 것이 이집트 룩소에 있는 카르낙 신전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
뭐 점령지에서 하나씩 들고오는 건 고대에 더 심했다지만, 이런 커다란 오벨리스크를 싣고 왔다니.
그것도 기중기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고대에.
이스탄불 앞바다에 뜬 거대한 배로 이 오벨리스크를 옮겨오는 장면을 순간 머릿속에서 장관을 연출하곤 잠시 아찔함을 느낀다.
지금도 터키 - 이집트를 다녀오는 사람들은 배로 다녀오고 있으니까, 그 때도 배로 운반했겠지?


오벨리스크의 기저부는 로마에서 만든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가운데 있는 사람이 이 오벨리스크를 약탈...해온 테오도시우스 황제. 그리고 그 주변은 그 유명한 로마의 원로원...일리가 없지 -_-;; 황제 시대에 무슨;
이집트에서 이런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들고 왔다는 점에서 짐직할 수 있지만,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매우 강력한 시기의 로마의 황제였고, 당시 둘로 나뉘어있던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을 함께 다스렸던 사람이기도 하다.


청동으로 만든 기둥.
자세히 보면 세 마리 뱀이 몸을 꼬아 만든 기둥의 형태이다.
이 기둥은 원래 그리스 아폴로 신전 앞에 있던 것을 로마가 역시 마음대로 약탈새 이 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아폴로 신전 앞에 있었던 만큼, 그 내력도 바로 Python이라는 왕뱀을 아폴로가 잡은 것에서 유래한다.
신화에 따르면 이 Python의 아내 뱀이었던 Pythia는 아폴로의 힘으로 인간 형태로 변신하게 되고, 그 유명한 델피 신전에서 신탁을 내려주는 역할을 했다 한다.
실제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영화 300에서도 나왔던) 대제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당시 수거한 페르시아군 병장기를 녹여 만든 것이라고.
청동 기둥의 하단부에는 전쟁에 참가했던 도시들의 이름이 적혀있고, 저 휑한 꼭대기에는 사실 멋진 황금으로 된 삼발이가 놓여있었다고는 하는데, 천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반짝거리는 건 당연히 누군가의 탐욕에 꿀꺽 먹혀버리고 만다.

히포드럼 광장에는 3개의 기둥이 있는데, 나머지 하나인 벽돌로 쌓아올린 콘스탄틴의 기둥은 안타깝게도 보수중이라 보지 못했다.
외벽에 청동을 입혀놓았으나, 동전 주조하는데 홀라당 벗겨버리는 바람에 좀 흉하게 바뀌었던 것이, 심지어 지진으로 무너지기까지 했었댄다. -_-;;
그랬던 걸 다시 복구했다는데, 뭔가 문제라도 있는건지 쩝....

이제 옆에 있는 블루 모스크로 향한다.


이 건물은 오스만제국의 14대 술탄인 아흐멧 1세가 세운 모스크, 즉 회교 사원이다.
서방으로 따지면 황제라고 할 수 있는 술탄 아저씨가 은근히 꼼생원이었던 것인지, 건너편에 있는 '성 소피아 사원'을 능가하는 모스크를 짓겠다고 나선 결과물이다.


안타깝게도 안개탓에 모스크 전체를 만족스럽게 찍은 사진은 없음 -ㅅ-a
이 술탄 아저씨는 역시 속물근성을 이기지 못한 건지, '황금'을 좋아했나보다.
바라는 게 성 소피아 사원보다 더 화려한 건물을 세우려는 것이다보니, 건축가 '아야'에게 명을 내린다.
'모스크에 들어가는 첨탑은 황금으로 해라!'
그리고는 뒷일은 니가 알아서 하셈~ 해놓고 회교도들의 숙원인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버린다. -ㅅ-;


사진 아래쪽에 사람이 작게 나와 있으니,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당연히 저 건물을 황금으로 만들려면, 아니 도금이라도 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 것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격지심 충만한 술탄 아저씨가 예산이랍시고 배정해 준 돈은 첨탑에 금칠하기도 턱없이 부족했다.
굳이 황금칠을 하지 않더라도 여러 개의 돔 형태가 중첩되어 이루어진 사원은 충분히 웅장하고 아름다운데...


재치발랄한 우리의 건축가 아저씨.
황금을 뜻하는 단어와 '여섯'을 뜻하는 단어가 투르크 어로 거의 비슷하다는 데 착안해서, 술탄의 지엄한 명을 자기 멋대로 재해석해버린다.
'모스크에 들어가는 첨탑은 알틴(황금)으로 해라!' 라는 말을,
'모스크에 들어가는 첨탑은 알티(여섯)으로 해라!' 라고 알아듣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블루모스크는 유일무이한 여섯 개의 첨탑을 가진 회교 사원이 되었고.

순례 다녀온 술탄이 당연히 짜증을 벌컥! 냈겠지만, 이미 다 지은 건물을 어찌하랴. -ㅅ-;
하지만 그렇다고 건축가가 건물을 대충 지은 것이 아니다.
성 소피아사원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상당히 웅장한데다, 푸른색의 타일로 만들어진 멋진 건물이다.


저렇게 아라베스크 양식의 문양이 건물 곳곳에 들어가 있어, 밑에서 바라봐도 휑하지 않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회교 사원의 첨탑 끝에는 이렇게 초생달과 샛별이 들어가 있다.
알라의 뜻을 이 땅에 처음 가져온 마호멧이 그 깨달음을 얻었을 때,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초생달과 샛별이라고 한다.
터키 국기에도 멋지게 새겨져 있는 이 문양은 회교에서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가진다.


현재도 회교 사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 곳은 입구 바깥 쪽에 몸을 씻을 수 있는 설비가 되어 있다.
사원에 입장하기 전에 몸을 씻는 것이 관습이라서 이런 설비가 있는 것이라 하며, 당연히 남녀가 씻을 수 있는 곳이 다르다.
이 곳은 남자용. -ㅅ-a;


건축가 아저씨가 마음대로 첨탑을 6개나 지어 버린 건 아니다.
사실 회교 사원에서 첨탑은 매우 중요한 의미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회교, 즉 이슬람교에서는 하루 5번씩 기도를 드려야 한다.
손목시계나 자명종이 일반화 되지 않은 그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 시간을 알았으랴.
가장 원초적인 방법, 즉 소리쳐 외치는 방법이 이용될 수 밖에.
그러다보니 높은 곳에 올라가 소리쳐야 많은 사람들이 "아~ 기도시간인거구나" 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되고,, 이런 첨탑이 사원의 필수품이 된 것이다.
국민의 98%가 회교도인 이스탄불 전역에서 모스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반드시 이런 첨탑이 그 옆에 서 있다.
이 높은 첨탑도 안쪽으로 나선형의 계단이 놓여져 있어, 과거에는 사람들이 하루 다섯 번(!!) 오르락 내리락 하며 기도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지금은? 당연히 확성기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ㅅ-;
덧붙여,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 역시 여행 내내 지겹게 들을 수 있다;


블루 모스크는 여전히 사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내부 공간은 대부분 오스만 투르크 당시의 시설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바닥에 엎드려 예배를 보는 회교 특유의 방식 덕택에 의자는 필요치 않을 듯;;
내부에 보이는 저 전등들도 오스만 투르크 시절에 쓰이던 틀을 그대로 쓰면서, 광원의 종류만 촛불에서 전등으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앞부분에 울타리가 쳐져있다. 이 뒷부분은 관람객들이 구경하는 장소이고, 울타리 너머로의 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진에서는 건물 내부의 형태, 즉 돔의 안쪽 부분이 잘 보인다.
돔 형태를 잘 활용한 덕택에, 이 거대한 사원은 그 규모에 비해 기둥의 수가 턱없이 적다.
특히 가장 큰 메인 돔의 바로 아래에서는 그 까마득한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밖에서 바라보는 블루 모스크의 모습도 대단하지만, 그 안에서 둘러보는 '광경'은 당시 강성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힘을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유리창 역시 빼놓지 않고 이렇게 스테인드 글라스로 끼워놓았다.
하긴, 사원에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강렬한 햇볕에 가끔 애먹을 때도 있었을테니까.
블루 모스크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더욱 어울리는 건, 사진에선 희미하게 보이는 바로 그 옆의 타일 덕택이다.


바로 이런 색색의 타일이 끝없이 반복되는 형태의 무늬를 이루며 곳곳에 발라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같은 산업시대야 이런 타일을 공장에서 찍어냈겠지만, 그 시절에는 당연히 모두 수공업으로 제작했을 것이다.
타일 한 장을 만들어 내는 것도 화가 내지는 타일 전문 직공이 한 명 붙이서 꼬박 저 문양들을 그러녛고 신전에 봉헌한 것이다. (그냥 립 서비스로 봉헌하는 것과는 다르다!)


능력이 안되어 사진으로는 더 담지도 못하고 눈으로나마 구석구석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가이드에게 매인 패키지 여행 참가자인지라, 이끄는대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오는 수 밖에.


해가 어느 덧 건물 위까지 떠오른 상태였지만, 안개는 여전히 짙게 드리워있다.
첨탑의 끝부분이 안개로 희미해지는 것도 여전하다.
첨탑이 높은 것도 있지만, 안개가 짙은 탓이 더 큰지라, 안개에 대한 원망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파란 하늘 아래서 찬란히 빛나는 블루 모스크가 보고 싶었는데.


블루 모스크를 나와, 이젠 톱카프 궁전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있었던 어린 소녀 모양의 화분.
화분 치고는 제법 크고 독특하게 생기긴 했다만, 아니지, 이로는 충분치 않아.


바로 그 앞에서 시체놀이 하고 계신 견공이 계셔야지!
숨을 사근사근 몰아쉬며 안개든 뭐든 가리지 않고 열씨미 잠을 즐기고 계신 이러한 견공의 태도는, 터키 전역에서 이미 널리 퍼져있는 참으로 부러움 살만한 생활 태도다.
모스크와 마찬가지로, 여행 중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시체놀이에 열중하는 견공들. -ㅅ-;


이스탄불 구 시가지는 앞서 말했듯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지정 문화 유산으로 보호받는다.
그래서 바닥에도 쉽게 아스팔트를 까지 못하는 모양.
저런 형태의 좁은 벽돌길로 대형 버스가 다녀야 하는 터라, 자칫 좁은 골목에서 버스 둘이 마주치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칠 수 밖에 없다.
버스는 괴롭겠지만, 멀리서 온 여행객들은 이 벽돌 중 몇 개는 수천년 동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하며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
어쩌면 내가 밟고 있는 벽돌은 로마의 황제와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 밟았던 바로 그 벽돌일지도 모르잖아!

이스탄불은 그리스 시절에 세워졌었고, 아까 그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시기에는 로마 제국의 수도였다.
그 뒤를 이어 비잔틴제국, 그리고 지금 가는 톱카프 궁전이 세워진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무려 "제국"의 수도를 전담한 도시다.
대지위에 스쳐갔을 그 찬란한 문명들을 생각해보면, 벽돌에 대한 상상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발칙한 것은 아니다.


견공과 함께, 도시 곳곳, 아니 정확히는 관광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장면은 바로 이런 쥬스 가게.
보기만해도 혀 밑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새콤한 석류와 자몽들을 저렇게 전시해두고, 관광객의 주문을 받으면 즉시 서걱 갈라서 압착기로 즙을 내준다.
번화한 관광지에서는 $2 정도로 한 컵을 주지만, 조금 한가한 곳으로 가면 같은 가격에 한 병을 주기도 한다. :)


톱카프 궁전 입장권.
터키는 희한하게도 바코드식으로 되어 있는 입장권을 많이 쓴다.
그것도 지하철처럼 입장권과 사람이 함께 차단막을 넘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입장권이 일종의 일회용 열쇠 역할을 하기 때문에, 차단막에서 입장권을 인식시키고, 다시 빼낸 다음 넘어가야 한다.
사소하지만 좀 불편해 보임 -_-a...근데 이런거 신경쓰는 건 공돌이밖에 없을껄?;; 남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감;;;

톱카프 궁전의 위치는, 사실 이스탄불의 유래라고도 할 수 있는 비자스 설화에서 다루는 곳이다.
그리스의 지도자였던 비자스라는 아저씨가, 저 위에도 이야기했던 델피에 가서 도시세울만한 좋은 곳좀 알려주세요~라고 했더니 한참 있다가 사제가 나와서 하는 말, "눈 먼 땅에다가 도시를 세우렴".

이 말뜻을 몰라 한참 헤메고 다니던 비자스 아저씨는 이 톱카프 궁전이 서 있는 이스탄불에 와서는, 3면이 바다로 둘러쌓인(어디서 많이 듣던 수식어니까 상상하기 쉬울 듯 해서 지도 따위는 생략한다. -ㅅ-) 이 곳의 지형을 보고는 "아하, 눈 뜨고도 이 곳을 지나쳤으니 여기가 바로 눈 먼 땅이구나!"라고 귀걸이 코걸이식 해석을 마친 뒤, 여기에 도시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것이 굳이 세계사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더라도 귀에 익숙한 "비잔티움"이라는 도시이고, 이 비잔티움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의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로 바뀌게 된다.
당시 비자스 아저씨가 자기편의적 해석을 내리게 된, 3개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위치가 바로 이 톱카프 궁전이 서 있는 곳이다.


이 문은 톱카프 궁전의 두 번째 문으로, 경의의문이라고 한다.
첫 번째 문은? 안찍었다. 깜빡하고 -_-;;
하지만 뭐, 첫번째 문 안쪽으로는 일반 백성들도 많이 드나들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일반 백성들이 지나다닌 곳 따위를 내가 찍을쏘냐...는 말도 안되는 변명이고;;
GPS잡으려고 있는데 안개 탓인지 지독하게도 못잡더라. ㅠㅠ


그리고 이 안쪽부터가 이른바 왕의 정원인 것이다.
나무들이 길다랗고 아래쪽이 시원시원한게 그야말로 정원수라고 불러줄 만 하다.
여름철에도 그늘이 아주 시원하겠어~


그리고 한참 더 들어가면 나오는 이 곳이 바로 "지복의 문".
이 지복의 문은 바로 술탄과 그 최측근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이 건너편이 그 유명한 하렘이었기 때문. -ㅅ-
지금은 그 용도가 바뀌어서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지복의 문 바로 앞에는 "Sacred Standart"라고 쓰여있는, 구멍뚫린 작은 대리석 돌이 있다.
Sacred Standard의 오타인듯;;;
오스만 투르크 왕이 원정을 나가서 큰 승리를 하고 돌아오면, 그 깃발을 여기에 꽂았다고 한다.


하렘(...)은 이렇게 건물 밖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안쪽에 옛날 하렘을 충실히 재현해놓은 탓......은 아니고;;;
의복과 보석류, 그리고 이슬람교의 종교적 보물들을 전시해놓았는데 뭔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사진 촬영을 금지해놓았기 때문이다.


사진촬영 금지를 알리는 표시.
저 안쪽엔 그야말로 강대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모습을 또 다른 방법으로 상상하게 해주는, 휘황찬란한 보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려 주먹만한 다이아도 전시되어 있다는데....뭐, 보석에 그닥 관심이 없다보니, 예쁘장한 돌을 황금에 끼워놨네~ 칼자루에 끼워놨네~ 정도?;;
목걸이류는 내가 보기에도 이쁘장한게 몇 되긴 하더라. 근데 뭐, 이런 걸 두고 그림의 떡이라 하지.
주먹만한 다이아 옆에선 경비원이 상주하고 있다;
눈이 헤까닥 뒤집힌 아낙들이 소방용 도끼로 깨부술까봐 걱정되었던 듯. -ㅅ-;

그리고 이슬람교 종교유물 전시관에는 성자들의 유골들을 비롯한 여러 성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선지자 마호메드가 승천하기 직전에 남겼다는 족적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이슬람교에 있어선 그야말로 절대가치를 지닌 성물중의 하나일 듯.
뿐만아니라, 구약성경을 기독교, 천주교와 공유하다보니 귀에 익숙한 성물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모세의 지팡이".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켰을 때 사용했다는 지팡이라고는 하는데...음. 별다른 신기는 느껴지지 않더라;
이 전시관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스피커를 통해 코란을 낭독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녹음된 테입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갈때 쯤 이슬람복장을 갖추고 마이크 앞에서 엄숙하게 낭독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ㅅ-a


하렘에서 마음껏 뛰놀고 있는 어여쁜 암컷...을 발견하고는 놓칠 수가 없어서 찍었다..........;;;
콧대는 높아서 손 내밀었더니 대답도 안하고 도망가더라;;


밖으로 나와서 찍은 블루 모스크
이제 어느 정도 안개가 좀 걷혀서, 파란 하늘도 보이고 블루 모스크의 첨탑 6개도 보인다.
여전히 뒤쪽 첨탑들은 안개로 살짝 희미해지긴 하지만. -ㅅ-a

이내 걸음을 옮겨 그랜드 바자르라는 시장으로 향한다.


그랜드 바자르는 1461년부터 (외운게 아니라, 저 사진에 있는 숫자;;)주욱 내려온 거대한 실내시장이다.
그렇다고 다른 관광지처럼 현재의 건물들이 그 때 부터 사용되었었던 건 아니다.
시장이라면 피할 수 없는 여러 번의 대화재와 터키라면 피해갈 수 없는 대지진을 겪고나니, 지금의 그랜드 바자르는 현대 건축물이라고 봐야 할 정도.
단지, 실크로드의 종착지라고 불리워졌던 그 전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전통이라는 게 무시못하는게, 이 곳에서 이루어졌던 거래품목은 단순 향신료뿐만이 아니다.
실크로드 때 활성화 된 시장은 자연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다보니, 그동안 거래되어 온 품목들도 상당하다고 한다.
한 떄는 노예시장으로서도 유명했고, 소비에트 연방 붕괴시절에는 러시아 황실의 보물들도 이 곳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오늘날 내부에서 많이 파는 것은 저런 화려한 등, 도자기, 카펫, 그리고 간단한 기념품류이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시장으로 바뀌어버린지 오래.
그래서 이 곳에서 파는 품목들은 다른 곳보다 상당히 비싼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을 터키의 용산이라고 불러주겠어~
지나가는 사람들 호객행위 하는 것도 그렇고(한국어도 심심찮게 들린다), 비싸다고 몸 돌려 나갈라치면 "그래서 얼마까지 알아봤는데?"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그렇고. -_-;;;
대부분의 상점이 반값 정도는 거의 기본으로 깎아준다.
흥정이고 자시고간에 애초에 높게 불러서 많이 깎아준다는 전략인가 싶다.
작정하고 깎아보면 좀 더 깎을 수도 있겠지만...역시나 가이드에게 매인 몸은 자유치 않으니.
그냥 아무 상점에나 들어가서 나자르 본주! 여러 개 살테니 깎아줘요! 라고하고 들고왔다.
(근데 한국에 왔더니 죄다 깨졌어 흑흑 ㅠㅠ)


그리고 다음에 향한 곳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 밥 먹는 곳!!
처음 먹는 터키 현지식이기도 하다.
역시나 빵은 언제 어디서나 나옴;


패키지 투어 일행들에게 가장 평가가 안좋았던 건 바로 저 스프.
약간 시큼한 냄새의 걸쭉한 콩 스프인데, 다들 먹기 불편하다며 고추장을 연신 찾는다;
음, 뭐 개인적으로는 여행중엔 현지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이미 남미에서 먹어봤던 스프랑 비슷하기도 해서 별 거부감 없이 쓱싹쓱싹 잘 먹었다.
저 빵을 찢어서 스프에 담궈 먹으면 시큼한 맛과 쫄깃한 빵 맛이 어울려 상당히 맛있기도..;;;

점심을 먹고 나서 향한 곳은....다음 관광지인 터키의 수도 앙카라.
이스탄불로부터 약 450 km가량 떨어져 있는 도시다.
패키지여행이다보니, 대개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나절까지 관광지를 돌아보고, 오후 남는 시간은 버스로 다음 숙소까지 달려가는 일정이다.
잠은 반드시 누워 잘 수 있는 숙소에서 재워주겠다는 여행사의 의지이긴 한데..


앙카라에서 묵은 숙소가 이 모양이라서야 뭔;;;
정말 손바닥만한 TV는 구색갖추기인 듯 싶고, 외풍이 하도 심해서 옷을 단단히 껴입고 자야했다.
으으으으윽.
숙소 돌아보고, "이건 뭐 자유여행 다닐 때도 이런 데서 잘 생각은 안하는데!"라고 한숨 푹 내쉬어주고, 동네 마실 나가본다.


이 곳은 터키 앙카라 편의점..이랄까 동네 마트랄까;
치안이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모양인지 1층에는 쇠창살 없는 집이 없는 곳이 없었는데, 의외로 판매점은 허술했다(?);;


길 가다 보인 헬스클럽.
저 K자 밑에 있는 광고판은 태권도 사진이다 :)


이 사진은..터키의 플스방. -ㅅ-;;
축구가 있기있는 나라라고 하더니, 입구쪽에 Winning Eleven 포스터가 붙여져 있고, 안에서 게임하는 애들도 몇 보였다.


그리고 전자제품 대리점.
가전제품은 뭔지모를 브랜드 하나와 LG가 양분하고 있는 듯;
특히 길거리 가다보면 보이는 에어컨 실외기는 LG 점유율이 절반을 넘는다.
공항쪽에서 간간히 한국의 다른 브랜드도 보이는 정도.


그리고 냉장고에 가득 쌓인 EFES 맥주.
터키의 지역맥주이기도 하고, 맥주의 고유 상표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
술집 혹은 술 판매처에는 꼭 EFES 그림이 붙어있다.


회교국가라 술 마시면 안될 듯 한데...점원한테 손짓 발짓으로 이거 여기서 마셔도 됨? 이라고 물어봤더니 상관 없댄다.
하긴 뭐, 못 마실꺼면 애초에 팔지도 않았겠지?;;
마셔본 느낌은...상당히 텁텁하다.
좀 독하다고 느낄 정도의 첫 맛이 지나가면, 깔끔하게 탄산으로 넘어가게 된달까.
뭐, 간단히 말하면 맛있었다. -ㅅ-a
마음같아선 한 캔 더 사서 먹고 싶었지만....왠 동양애 하나가 가게 앞에서 캔 따는 모습을 지역주민들이 힐끔힐끔 구경하는 모습에 못이겨 도망치듯 숙소로 귀환;;

좀 번화가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좀 오랫동안 헤멨음에도 불구하고 이 쪽은 주거지역인지 번화가가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서울의 동네 상가 정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곳 까지만 쭐래쭐래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온다.
혼자서 길 잃으면 좀 난감하니까;;

돌아온 숙소에서 반갑게 맞아준 외풍과 함께 미끈미끈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온몸으로 스프링을 느낄 수 있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내일은 앙카라 시내구경을 정말 번갯불에 콩 볶듯이 하고,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지냈다던 괴레메 계곡 쪽을 구경하러 갈테지.
은근히 피곤했던지, 아니면 처음 마셔보는 터키 맥주의 힘인지, 몇 장면 상상해보기도 전에 스르륵 잠이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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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011년 끝자락.
여름휴가 가겠다고 2주동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제 대기중'이란 단어만 내놓는 업무 시스템과 함께 한숨쉬고 1주일을 더 미룬 끝에 드디어!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ㅠㅠ

11월에 가는 여름휴가이니 멋지게 남반구에서 따뜻한, 글자 그대로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운치있는 상상도 했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여유있게 여행갈 곳을 고르게 해주는 회사가 아닌지라, 그냥 손에 닿는 일정으로 떠난다.
그래, 간다는게 어디냐. 어디로 갈지 몇 달 전에 미리 값싼 비행기표 사두고 같이 갈 사람도 구해서 즐겁게 놀다 오는 게 여행의 정석이라지만....
애초에 그렇게 착실하게 살았던 인생이 아니란 건 성적표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_-;
뭐 어차피 난 벼락치기 인생이니까. ( -_-)


그래서 갑작스럽게 가게 결정된 곳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있는, 대제국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터키!
워낙 급한 것도 있고, 여행일정 짜기엔 시간도 많이 없다는 이유와, 기타 무수한 핑계를 대며 여행사 패키지로 다녀오기로 한다.
사실 개인적인 취향은 자유여행쪽이 더 맞긴 하다만...얼른 회사를 때려치워야 가능할 듯.
근데 공교롭게도, 가게 된 여행사가 회사 출장갈 때 항공편 / 숙소 예약 업무를 처리해주는 곳이라 추가 할인 5%를 받아서 가게 됐다. -ㅅ-;;
이럴 땐 써먹어 줘야 하는 거임.

한국에선, 솔직히 말하자면 월드컵 때 갑자기 "형제의 나라"라고 유행세를 탄 덕택에 크게 알려진 곳이다.
"터키가 형제의 나라래~"
"응? 터키가 왜?"
"몰라, 6.25 전쟁 때 파병했다나봐"
정도랄까;;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터키는 우리나라 역사서에 나오는 '돌궐'이라는 나라로, 한 때 고구려와 국경을 마주하기도 했다.
형제의 나라라는 인연은 그 때 부터 시작된 셈.

자, 어쨌든 아직 터키 땅은 밟지도 못했는데 역사 얘길 할 필요는 없겠고. -ㅅ-a;;



여행 중 가장 기분 좋은 순간 중 하나는 바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다.
"분명히 가서 쓸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왠지 이건 가져가야 할 듯한 기분?"이라며 가방 싸는 일도 그 중 하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도 정말 가는게 맞는건가? 싶을 때도 종종 있긴 하다 :)
간만에 공항버스에서 짐 일렬로 세워주는 분까지 나와계시다.
지난 번이랑 지지난 번 탈 때는 그냥 알아서 척척척 실었는데. 왠지 이 번엔 떠나는 첫 날 부터 운이 좋은 모양 :)


사실, 이 번이 패키지 여행으로 공항에서 떠나는 건 처음이다.
지난 번엔 회사 단체로 간거라, 회사에서 모여서 우루루 갔었는데, 알고보니 원래는 공항에서 모이는 거랜다. -ㅅ-;;
A카운터에서 더 끝 쪽으로 가면 아예 패키지 투어용으로 만들어놓은 책상들이 있다는 것도 이 번에 알았다.
음음;; 멋모르고 평소처럼 일찍 가서 기다리긴 했지만, 패키지 투어라면 굳이 일찍 갈 필요 없이, 미팅 시간에 딱 맞춰 가는게 제일 나을 듯.

어쨌든, 거기서 인솔하시는 분께 간단한 설명 듣고, 여행사에서 준비한 작은 터키 소개 책자와 가방 부착용 이름표를 받아 붙인다.
티켓은 일괄로 여권을 걷어 배부해주는데, 대신 짐 붙이는 건 직접 해야 한다.
패키지 여행이다보니 한 번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건 어쩔 수 없을 듯.
그래도 오래 기다리진 않고 금방 면세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신, 시간이 아슬아슬한 탓에, 그리고 집합 시간이 잘못 전달된 탓에 비행기 출발 시간에 거의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다음부턴 제발 빨리오세요!"라는 대사에 악의를 잔뜩 담아 던지는 대한항공 직원들을 마지막으로, 비행기 안으로 들어선다.



이번에 타고갈 비행기는 러시아 항공, Aeroflot airline이다.
인천 - 모스크바까지 9시간동안 타고 간 다음, 다시 모스크바 - 이스탄불의 3시간 비행을 러시아 항공으로 가게 됐다.
공항에선 대한항공 직원이 업무를 봤던 게, sky team에 속해있어서 대한항공과 code share로 운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내 서비스나 시설은.....완전 천지차이;;


팔걸이의 윗부분이 저렇게 분리되는 비행기는 처음 타본다;
아니 뭐 이건 동네 프로펠러기도 아니고..-_-;;;
볼리비아에서 탔던, 초원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이 대륙을 횡단하는 비행기보다 훨씬 고급스럽게 느껴질 정도.
기내식 먹을 때 사용하는 선반엔 커피가 말라붙은 자국이 가득, 의자 곳곳엔 찌든 때와 더불어 몇 달 전 손님의 자취일지 모르는 이쑤시개도 바닥에서 굴러다닌다.

당연하지만, 좌석에 개인용 모니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지니스 석도 마찬가지)
노트북 배터리를 빼놓고 온 걸 뼈저리게 후회할 수 있는 시간이, 인천 출발 모스크바 도착하는 9시간 동안이나 주어지게 된 셈.

거기에 추가로, 러시아 항공 이용시 수하물이 굉장히 많이 없어진다는 악평이 자자하다.
출발 전, 이미 그런 내용을 여기저기서 들은 터라, 여행사 쪽에 물어봤었다.

"저기, 러시아 항공 수하물 분실이 굉장히 자주 일어난다던데..정말이에요?"
"아, 요샌 괜찮아요. 제가 올 해도 여러 번 탔었는데, 대략 10번에 2~3번밖에 안 잃어버릴 정도로 많이 줄었어요."

....10번에 2~3번이면 20% 정도로 잃어버린다는 얘긴데, 그게 많이 줄은거라니!!!!
충분히 자주 잃어버리는거 아닌가? 내가 이상한건가? ㅠㅠ
이런 얘길 듣고 비행기를 탔으니, 이스탄불까지 도착하는 내내 수하물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다 -_-;;;

대한항공 요금으로 러시아항공을 타게된다면 정말 두 번 다시 꼴도 보기 싫을 듯;
출발하기 전에 들었던, "내가 아는 사람은 50만원 이상 싸지 않으면 절대 안탈꺼라던데"라는 말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ㅅ-


미국 제국주의의 상징인 콜라캔에 인쇄된 러시아 글자.
이런 것만 가져오지 말고 서비스도 좀 본받아보셈...이라고 해봐야 델타 / AA도 그다지 친절하진 않았구나;;


자, 어쨌든 시간은 흘러흘러 어느덧 아침에 탔던 비행기 창 밖으로 석양이 보일 정도가 됐다.
9시간이나 타고 가야 하는데...솔직히 말하면 매우매우 지루했다. ㅠㅠ
가져간 책은 순식간에 다 읽어버리고, 기내식이라고 나온 것들은 (기분탓인지) 그닥 맛있지도 않았고..


저런 쬐끄만 화면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당연히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농담이 아니라, 손가락 두 개 붙여놓은 정도의 체감화면을 자랑하는 Video system!
거기에 덧붙여 내 좌석은 특별석이라, 자칫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숙면을 방해하거나 난청을 유발할까봐 고장난 상태였다. 아이고 친절도 하셔라.


기내식의 후식으로 오예스가 나왔길래 한 컷..-ㅅ-;;
맛이없다고는 했지만, 그건 주식으로 나온 요리 얘기고, 샐러드는 꽤 맛있었다.
의외로 아삭아삭한게 러시아산이 아니라 한국에서 산거 아닐까~ 했는데 오예스를 보고 심증을 굳혀가는 중.


자, 9시간 걸려서 드디어 내린 모스크바 공항.
여기가 또 만만치 않은게, 환승 대기 시간이 약 5시간이다......-_-;;;

이런 승객들을 배려해서인지, 너무 일찍 들어가면 지루해 할 까봐 천천히 여유있게 승객들을 통과시키는 모스크바 공항 직원들.
저 문 통과하는데 대략 30분이 넘게 걸렸다.
아무리 한국이 빨리빨리에 익숙해져있다고는 해도, 모스크바 공항이 다른 곳들에 비해 좀 유별난 듯.
러시아인들의 국민성이라고 봐야 하나?? -_-;;


공항 직원들의 배려로 충분히 시간을 많이 썼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시간은 많다.
뭐 전세계 어딜 가도 공항의자가 딱딱하고 기다리기 불편한 건 마찬가지인지라, 공항 라운지에서 쉬기로 한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PP카드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Amber lounge 한 곳.
(아래 쪽에 Priority Pass라고 붙여져 있다)
그리고 알고보니 KAL과 제휴를 해서, Morning calm premium 이상 등급이면 무료로 쓸 수 있다고 한다.

근데 뭐...여긴 그냥 "의자가 푹신하고, 음료수가 무료이다"정도로 위안삼아야 할 듯;
음료수의 종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빵 종류는 그냥...구색 갖추기?
LA에서 들어갔던 KAL lounge도 정말 "매우매우 간단한 스낵류" 정도만 있었지만, 거긴 그래도 분위기라도 좋았지...
그래도 여기에서 9시간의 즐거운 동반자였던 핸드폰을 충전시켜주고, 푹신한 의자에서 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PP카드가 아니라 돈 내고 여길 들어갈 바엔, 근처의 다른 음식점이나 pub을 이용하는게 낫다.

공항 의자에 앉아서 쉬는 것은 절대적으로 비추천.
계단참이나 면세점 옆 공간등, 무려 실내에서 바로 담배를 피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매우 공기가 탁하다.
비흡연자라면 매우 짜증나는 곳.
흡연자라해도, 한국 편의점보다 비싼 면세점 담배가격을 보면 조금 짜증나지 않을까?
모스크바 면세점은 유로를 사용하며, 담배 한 보루에 21 유로, 한화로 대략 3만2천원 정도 한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이동하는 중에 올려다 본 곳엔 3D TV가 매달려 있었다.
오오...이건 또 신선한데~ 하면서 광고로 나오는 3D도 잠깐 감상해준다.
그리고 뭐... 이건 그냥 두어 번 보면 신기함이 사라지는 종류라;; -ㅅ-;


모스크바 - 이스탄불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는 곳.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스크바가 러시아 항공의 기착지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터키 - 러시아간에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간단히 3시간 정도의 비행이라, 음료수 마시고 기내식 한 번 먹으면 순식간에 도착한다.
3시간 정도의 비행이 부담도 없고, 기내식도 먹고 딱 좋은 듯 -ㅅ-;
그러고보니 같은 이유로 혹시 러시아에서 터키로 여행가는 사람이 많은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창밖으로 내려다 본 이스탄불 시내.
아래에 흐르는 검푸른 물이 보스포러스 해협이다.
이스탄불은 저 해협을 사이에 두고 한 쪽은 유럽, 한 쪽은 아시아 대륙에 속해있다.
전 세계를 통 틀어봐도, 하나의 도시가 두 대륙에 걸쳐있는 경우는 유일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런 지리적 조건은 해상교통 및 육상교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 이스탄불이 문명의 중심지였던 데는 이런 유리한 위치가 매우 크게 작용했겠지.


이스탄불의 전력사정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한국으로부터의 원전 수주 계약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까.
선진국으로 따진다면야, 그리고 그렇게 노래부르는 '국격'으로 따진다면야 G20 결성 때 부터 거기에 속해있던 터키를 더 쳐주겠지만...
아직 터키는 농업 중심의 국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국토가 남한의 몇배나 되는 큰 나라이다.


공항에 주차해 놓은 옆집 비행기. 널찍한게 주차하기도 편하고, 문콕 걱정도 안해도 될 듯 -ㅅ-a


이스탄불 공항은 역시 모스크바 공항에 비해 일처리가 빠르다.
거의 인천 공항과 동등수준?
수하물은 인천보다 훨씬 더 빨리 나오기까지 했다!
매우 감격. 그리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짐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데 다시 한 번 감격, 그리고 감사.
워낙 걱정했던 나머지, 짐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게 매우 기뻤다. :)
다른 일행들의 짐도 모두 무사 도착!
이거 너무 겁먹었던 거였나?;;


이스탄불 공항은 제법 깨끗했다.
바로 전에 봤던 게 모스크바 공항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공항 밖에는 저렇게 대기하고 있는 차들이 매우 많은데, 관광객을 태우러 온 차들도 있고, 해외에서 돌아오는 터키인들을 태우러 온 차들도 많다고 한다.
이슬람교 신자가 전 국민의 98%를 차지하는 나라인 만큼, 이맘 때 쯤이면 메카로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사람들로 인해 공항이 매우 붐빈다고 하니까.

다행히 우리가 나올 때는 그다지 공항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금방 나올 수 있었지만,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나, 공항 의자에서 이불로 몸을 둘둘 감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거나, 다녀오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 시내로 이동한다.
이 곳이 나름 숙소가 많은 곳인 지, 호텔 간판도 여기저기 보이고, 1층엔 상점들이 가득.
하지만 자정이 넘은 시간인지라 모두 불은 꺼져있다.


이 곳이 묵게 될 숙소.
4성호텔이란 얘긴데....방은 고시원을 연상케 할 정도로 좁았다. -ㅅ-;;
엘리베이터도 사람 4명이 타면 가득 찰 정도로 작았는데, 이건 터키의 숙소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놀랐던 것이, 터키 전역은 물에 석회질 성분이 매우 많이 함유되어 있다.
말로만 들었지만 샤워하려는 순간 물이 너무 미끈미끈해서 깜짝 놀랐다.
당연히 비누가 잘 풀리지도, 잘 닦이지도 않는다.
호텔 로비와 화장실에는 "절대 마시지 마시오"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고.

뭐, 고작 일주일이니까~ 라면서 어쨌든 몸을 씻고 침대에 눕는다.
약간 개운치 못한 느낌과 좁은 방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잠깐 들지만, 16시간의 비행 일정에 지친 몸은 순식간에 잠들게 된다.

본격 터키 여행은 내일 부터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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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기념.

만일 시애틀에 간다면,

돈 없어서 차도 못 빌리고 숙소에서 하루종일 보내다가,

운좋게 차 얻어타고 딱 하루, 시내 관광에 나서겠지.


분명히, 다리 하나 건너서 시내로 열씨미 갈 듯.


음악 박물관에서 가서 진짜 기타로 만들었다는 조형물을 직접 볼지도 모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커트 코베인 사진 보고 아는 척 할지도.


물론, 가게 된다면 바로 옆에 있는 Space niddle tower도 당연히 들르겠지.


꼭대기까지 올라간 다음, 후회할 수 있는 권리도 아마 돈주고 살지도 몰라.


그리고, 당연히 시애틀에 있다는 스타벅스 1호점에 들러서 '역시 로고는 바뀐게 더 낫네~'라고 할테고.


앞서 언급한 모 유명인사의 집도 한 번 구경 해 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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