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간단한 문장에 뭔가 있어보였는지, 여기 저기서 인용하고 이리 바꾸고 저리 바꿔 써먹는 통에 그냥 그 자체로 유명해진 어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책 제목이 원작이라고 한다. 그것도 로맨스. 영화로도 나왔다(희한하게도 18금이랜다).

저자가 책 제목으로 뭘 이야기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문장의 출처와 함께 끌려들어 온 줄거리를 봐도, '아침 드라마 소재란게 이런거겠지'라는 감상 이외엔 딱히 느껴지는 것도 없고.
어쩌면, 그래서 내가 이 문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기 어려운 걸지도.

추락하는 것에 날개를 달아놓다니.
어쩌자는 거야. 희망고문이라도 하자는 건가?
아니면 날개가 있어서 높이 올라갔으니까 떨어진다는 것인 걸까?

어찌되었든, 이런 걸 고민하기엔 가방 끈이 길지도 않을 뿐더러, 공돌이라는 정체성에 어울리는 일도 아니다.
공돌이라면 모름지기, 역학적 분석을 통해 최적의 해를 찾아내야 하는 법.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진자.
추락하는 추에 가느다란 줄을 달아준다.

Sir 아이작 뉴튼 경께서 발견했다는 전설이 말하는 것처럼,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추락할 정도의 자격을 갖춘 물체는 자연히 위치 에너지도 가지고 있게 된다.
위치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꿔가며 추락하던 추는, 실에 매달려 진자가 되면 어느 순간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를 다시 맞바꾸기 시작한다.
추락 - 상승 - 추락 - 상승의 과정을 반복하는 업에 사로잡힌 셈이다.

운동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역시 뭔가 있어보이는 이름의 증거자료로 종종 제출되기도 하는 이 현상에 따라, 나 역시 가느다란 줄을 하나 매달아 보았다.
제 아무리 무거운 추라 할지라도, 버틸 수 있는 실만 매달아 놓으면 언젠간 추락에서 다시 비상으로 바뀌리라 믿으며.
비록 부침을 반복하겠지만, 언젠간 떨어졌던 만큼 다시 올라갈 수 있으리라 믿으며, 아슬아슬한 장력으로 간신히 버티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는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던가.
수십, 수백 번 실험을 재현해 본 과학자들은 "공기의 저항 때문에, 진공상태에서만 가능하다"라는 수정조항을 덧붙였다.
글쎄, 그렇다면 단 한 번의 기회,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운동 에너지 뿐이었던 과거의 추가, 얼마 남지 않은 운동 에너지로 버둥거리고 있는 진자가 되었을 때는 무엇을 덧붙일 수 있을까.

추락하고 있는 것에는 차라리 날개라도 달리길 바라는 기원처럼, 무익한 소망을 하나 덧붙일 뿐이다.
꿈에는 무게가 실리지 않으니까.

인터넷에서 누군가 티스토리 초대장이 필요하다고 해 들어온 김에 끄적끄적.
내일은 다시 감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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